주방이 내 전담구역이 되자 와이프는 공주로 등업 되었고, 아들은 왕자가 되었다. 오늘 저녁은 뜻밖에도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허리 통증에다 고관절 석회화 건염 의심 증상으로 며칠째 골골하다, 겨우 힘을 내서 동네 마트에 갔다. 하림 닭볶음탕을 세일하는 걸 보고 싼 맛에 한 개 사왔다.
그런데, 저녁에 요리를 하려고 포장을 뜯다가 경악했다. 아니, 양념장이 없잖아?
이미 개봉한지라 다시 넣지는 못하고, 당황하면서도 급하게 닭볶음탕 레시피를 검색해 보았다. 인터넷에서 띄워주는 닭볶음탕 황금 레시피는 다음과 같았다. 일명 백종원 레시피라나.
닭볶음탕 재료 준비하기
닭고기 한 마리, 물 종이컵 3컵, 대파 2대, 청양고추 2개, 홍고추 3개, 표고버섯 3개, 새송이버섯 3개, 당근 1/2개, 감자 2개, 양파 1개, 간 마늘 1큰술, 고춧가루 1큰술, 진간장 4/5컵, 설탕 3큰술, 후춧가루 적당량
아, 근데 집에 감자도, 양파도 없는데, 어쩌지? 에잇, 있는 재료 가지고 되는대로 해보자. 이렇게 해서 난생처음 닭볶음탕 요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ㅜ 아무리 요린이지만 백종원 레시피에서 제시하는 닭볶음탕 재료를 다 집어넣으면 양이 어마어마할 것 같기도 했고, 설마 다듬어진 닭고기인데 못할 것도 없다 싶었다.
닭볶음탕 자체 개발 레시피
백종원 닭볶음탕 황금 레시피에서 홍고추와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감자, 양파는 집에 없었으므로 당연히 넣지 못했다. 대신, 당근을 한 개 넣었고 애호박 한 개도 넣었다. 간 마늘을 세 큰 술 정도로 듬뿍 넣었고,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맛술도 넣었다.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참지 액젓을 추가했다. 또 달짝지근한 맛을 위해 고추장을 한 큰 술 정도 넣었다. 설탕을 되도록이면 적게 넣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물을 붓고 진 간장을 넣고 요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 이게 닭볶음탕이 제대로 되려나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재료들을 팬 위에다 하나 둘 추가해 가면서 볶기 시작했다.
재료들을 팬에 올려놓다 보니, 재료들로 팬이 넘칠 것 같았다. 어? 닭볶음탕은 냄비에 해야 되는 거구나, 내가 어째 팬에다 할 생각을 다했지, 이런 이런, 왜 이렇게 생각이 없는 걸까? 닭볶음탕을 팬에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 원 참.
그럼에도 닭볶음탕은 뽀글뽀글 끓기 시작했고, 진득하게 30여 분간 끓인 끝에 드디어 닭볶음탕을 완성하여 가족 식탁에 납품할 수 있었다.
시식 시간이 다가오자 자신감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퇴근해서 식탁에 앉은 와이프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 녀석도 깐깐하긴 마찬가지였다.
닭볶음탕 가족 시식 결과
"와아, 오늘 닭볶음탕 했구나! 어디 맛 좀 볼까? 와우~ 맛있는데, 우리 남편이 이제 못하는 요리가 없어요."
"맛있어요. 아빠, 요리 잘하시는데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음, 내가 드디어 셰프가 되는 건가. ㅋ 그러나, 이내 와이프가 감자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또 양파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발견해냈다. "감자와 양파를 넣지 않은 닭볶음탕 레시피이어도 나름 맛이 있네, 그래" 그러면 그렇지, 맛이 없어도 그냥 요리한 사람 체면 봐서 맛있다고 한 거였다. ㅜ
아무튼, 오늘 나는 닭볶음탕을 자력으로 요리해 내었고, 식구들은 다행히도 밥을 맛있게 다 비웠다. 그건 그렇고, 나는 언제 요리를 능수능란하게 뚝딱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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