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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줄거리와 독후감

by 로그라인 2023. 5. 6.

현존하는 소설가 중에서 김영하만큼 자주, 장기간 해외여행을 다닌 작가도 드물 것 같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는 작가로서 그토록 자주 여행을 다녔던 이유에 답하는 여행 산문집이다. 김영하는 쉽게 읽히는 글을 잘 쓰는 작가다.

사람들은 왜 여행하기를 좋아할까? 여행의 이유야 각양각색이지만, 크게 뭉뚱그려본다면 지치고 무료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진귀하고 새로운 세계를 맛봄으로써 다시 지루한 일상을 살아나갈 기력을 충전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어봐도 작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답정너인 여행의 이유도 작가답게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잘 풀어썼다. 뻔한 말도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신선하게 풀어서 말할 줄 아는 것이 작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작가 김영하 프로필

1968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시 학생회 간부로 활동했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어린 시절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여러 곳으로 이사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여섯 번을 이사할 정도로 어린 날의 잦은 이사에 대한 경험은 작가의 무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여행의 이유>에서 회상하고 있다. 

장편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별인사』,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의 합본인 『다다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하고, 자녀는 두지 않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다고 한다.

여행의 이유 줄거리

김영하 작가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밝혔다.

수많은 영화나 작품들은 연인과 트러블을 겪거나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플롯으로 전개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의 줄리아 로버츠가 그랬고, <로맨틱 홀리데이>(2006)의 케이트 윈슬렛과 카메론 디아즈도 그랬다. 

여행의 이유 109쪽

여행을 떠나면 실연의 아픔이 치유되는 것일까? 김영하 작가는 이를 궁색하지만 이렇게 설명한다. 여행을 가면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먹을 것과 잘 곳을 확보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래서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거듭하여 말한 것처럼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 81쪽
여행의 이유 81쪽

또 여행지에서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을 작가 김영하는 아래와 같이 장엄하게 묘사한다. 내가 <여행의 이유>에서 발견한 가장 멋진 문장이 아닐까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원경으로 물러난다. 범속한 인간이 초월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자아가 지워지고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의미로 육박해오는 이러한 초월의 경험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서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 살아온 집에는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는데,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던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는 점도 여행의 이유로 첨가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김영하 작가는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적이 없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간다는 이유를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낯선 여행지에서 아주 조금은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가 온 생을 통째로 흔들 정도로 아픈 것이라면 단순히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게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화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 김영하가 제시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이렇다. 작가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내면화되고 프로그램화되었다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 60쪽
여행의 이유 60쪽

즉,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년시절처럼 어디론가 떠나게 되고, 낯선 여행지에 도착해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고, 호텔의 예약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음을 확인하고, 방을 안내받아 깔끔하게 정리된 순백의 시트 위에 누워 안도하는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작가는 평생토록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김영하가 말하는 낯선 여행지에서 받아들여지는 달콤한 경험을 맛보기 위해 기꺼이 여행의 수고로움을 선택하는 이는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김영하는 천생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 쓰기를 여행에 비유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 작가는 소설이라는 낯선 세계로 비자 없이 바로 빨려 들어가고, 소설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지는 동안에만 작가도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작가는 여행의 자아 성찰적 의미도 살짝 덧붙였다.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중국으로 날아갔지만 하룻밤도 자지 못하고 중국 당국에 의해 추방된 경험으로 <여행의 이유>를 시작했다. 

이처럼 여행은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그러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이더라는 것이다.

여행의 이유 51쪽
여행의 이유 51쪽

사실, 본 리뷰에서의 줄거리는 작가가 제시하는 여행의 이유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기 위해 책의 플롯과는 다르게 정리했다.

여행의 이유 독후감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165쪽)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작가는 그 누구보다 인정 욕구가 아주 강한 작가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여행지에서 낯선 이들이 베푸는 환대의 달콤함을 그리워하게 된 것도 작가의 남다른 인정욕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인정 욕구는 늘 새로운 작품을 부단하게 쓰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어서 인기 작가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토크쇼 등 작가의 다양한 활동도 아마 그러한 욕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나는 업무상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고, 그 경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해외 출장을 회피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 적극적으로 해외 출장을 가지 않았던 것이 약간 후회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축구를 그렇게도 좋아했지만 이제는 조기 축구조차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지금은 이강인이 환상적인 드리블로 탈압박하여 짜릿하게 골을 넣는 장면들을 가끔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축구를 직접 할 때보다 축구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보다는 익숙함을 귀히 여기는 나이가 되었지만 호기심이 동해서 여행 에세이를 가끔 읽어본다. 이 책에는 중국에서 황당하게 추방당한 이야기에서부터 앙코르와트에 가기 위해 개고생 한 여행담들이 펼쳐지고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와 같은 여행관련 고전들을 재해석하며 여행의 숨은 의미를 캐내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일독하면 여행지에서 낯선 경험들이 한층 깊게 다가올 것이고, 여행 가기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일독을 하게 된다면 빅리그의 수준 높은 축구 경기를 볼 때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여행을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장도 깔끔하고 좋다.

참,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들도 있다. 이 글에 좋아요나 댓글이 달리지 않아도 별로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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