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슬픔에 대한 김영하의 작별인사
김영하의 작별인사는 자신이 인간인 줄로만 알고 성장해가던 기계인간 철이가 수용소에 끌려가 자신이 기계인간임을 알게 되고 삶이 바뀌는 대 혼란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SF소설이다. 작별인사는 작가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로 <밀리의 서재>의 청탁을 받고 썼다가 이번에 다시 개작해 복복 서가에서 출간했다. 복복 서가는 작가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1인 출판사이다.
언젠가 작가가 유시민과 정재승, 유희열, 황교익과 함께 출연한 알쓸신잡을 봤을 때, 담당 PD가 캐릭터들을 잘 끌어모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방송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이들은 쇼닥터이건 아니건, 캐릭터가 다 비슷비슷하다고 보는 편향이 내게는 있다.
아무튼, 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아들에게도 권했다. 인간과 기계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가 있기도 하고, 아들이 SF 소설을 특히 탐독하기도 해서였다.
"아들, 네가 좋아하는 장르 소설이다. SF소설인데, 함 읽어봐, 재밌어."
"김영하? SF 작가 아니잖아요. 김초엽의 SF 소설이 잘 나간다고 하니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고, 자기도 하나 썼겠지."
"어라, 우리 아들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네. SF 작가가 아니면 SF소설 쓰지 말란 법도 있어? 그러지 말고 한 번 읽어봐. 잘 읽히는 문체라 아빠도 세 시간 만에 읽었어. 넌 아마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거야."
아빠가 권하니 마지못해 읽어준다는 식으로 책을 갖고 가더니 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책을 툭 던졌다. 나는 책을 너무 느리게 읽는다. 아들은 책 읽는 속도가 나보다 최소 1.5배 이상은 빠르다.
"읽어보니 편견이 걷혔지? 어땠어?"
"(대답하기 귀찮다는 듯) 별 감흥 없었어요. SF소설치곤 너무 밋밋해. 철이는 시종일관 착하기만 하고, 선미는 뭐 마하트마 간디 같고. 그런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하하. 간디 하나로 충분했다고. 결정적으로 드라마틱한 이벤트도 없고, 인간과 기계 간의 싸움도 묘사가 너무 부족해. 아빠 이건 SF소설로는 부족한, 설정 구멍들이 너무 많아."
부자지간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인간과 기계와의 경계,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을 아들이 공감하기에는 이십 대는 너무 젊은 나이이지. 작가도 그걸 다 모르고 쓴 거 아냐라는 의심도 들기도 했으니까.
작가 김영하 프로필
소설가. 장편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이 있다.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으로 『보다』 『말하다』 『읽다』의 합본인 『다다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책날개)
작별인사 줄거리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 시대 배경은 최소 2030년대 후반은 넘은 근미래다. 남북은 통일이 되어있고 철이는 평양에 있는 휴머노이드 개발회사 휴먼 매터스 캠퍼스에서 아빠와 평온한 일상을 보내며 소년기를 보낸다. 소설 초반부를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영화 <트루먼 쇼>(1998)가 떠오른다. 철이는 자신이 아빠가 만든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바깥세상에는 나가 보지 못하고, 휴먼 매터스 캠퍼스 안에서만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이는 정부 요원들에게 무등록 휴머노이드로 인식되어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수감된다. 수용소에서 철이는 수많은 휴머노이드를 목격하게 되고, 수용소에 먼저 와 있던 선이와 민이를 통해 자신이 기계인간임을 서서히 자각하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선이는 휴머노이드는 아니었지만 태생이 클론이었기 때문에 수용소에 끌려와 있었는데, 선이는 작별인사 결말부에서 뜬금없이 클론은 물론이고, 휴머노이드와 동물까지도 따르는 영적인 지도자 비슷한 존재로 격상되어 나타난다.
철이와 선이, 민이는 민병대의 기습을 틈타 수용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겨울 호숫가에서 휴머노이드 '달마'를 만난다. 달마는 인류가 스스로 종말의 운명을 맞을 것이라며 기계의 시간을 준비하는 레지탕스의 지도자다. 달마는 두 동강 난 휴머노이드 민이의 몸을 다시 만들며 철이에게 서버에 철이의 정신을 업로드하여 불멸의 정신이 되어 기계의 시간을 같이 준비하자고 제안한다.
정부군의 습격으로 철이는 심각한 파손을 당하고, 아빠 최박사는 철이를 빼내 다시 휴먼 매터스 갬퍼스로 돌아가나, 철이의 몸을 예전처럼 쉽게 재건하지는 못한다. 이 사건으로 휴먼 매터스에서 해고된 최박사는 싱가포르로 전전하다 결국 말레이반도의 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철이는 다시 달마를 찾아가 자신의 몸을 다시 되찾고, 선이가 살고 있는 시베리아 오호츠크해 연안으로 방랑을 떠난다. 마침내 백발이 된 선이를 만난 철이는 그녀와 마지막을 보낸다. 선이가 죽고 세월이 흐르고, 인간을 닮은 존재는 자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시베리아 불곰의 공격을 받아 철이는 죽어간다. 달마가 당부했던 네트워크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요청 버튼을 그는 누르지 않았다.
김영하 작별인사 인상적인 문장
작별인사의 주인공은 기계 소년 철이었지만 나는 선이라는 존재에 더 끌렸다. 클론으로 태어난 선이는 인간과 휴머노이드,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수용소의 조건에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어린 소녀 선이가 애틋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돼.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100쪽)
- 선이가 수용소에서 철이에게 만트라처럼 자주 했던 말
작별인사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소설 속 세계를 우리가 어느 날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선이가 나름대로 생각했던 우주와 인생관일 것이다.
비단 소설 속 세계가 오지 않더라도, 선이의 인생관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태어났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주와 생명의 존재 의미를 늘 생각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몸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자연의 섭리에도 부합한다.
작별인사 에필로그
작가의 말에서 김영하는 "가끔 내가 그저 생각하는 기계가 아닐까 의심할 때도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그럴 때마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라고 썼다.
기계인간 철이를 만든 최박사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인류의 고귀한 유산이 철이를 통해 영속되기를 바랬다. 휴머노이드 달마는 인류가 멸종하기를 조용히 기다리며 개별적인 자아들이 사라진 통합정신을 꿈꾸며 기계의 시간을 준비했다. 자신이 기계임을 알게 된 철이는 클론 선이를 만나면서 삶과 죽음 너머에 있는 우주를 자각하게 되고, 불멸의 존재로서 영속적인 삶을 포기하고 필멸의 존재로 남기를 선택했다.
작가 또한 필멸의 삶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찾고, 기계와 인간이 차별되는 중요한 잣대로 필멸을 꼽았다. 대개 SF소설은 기계가 폭력적인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반면,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이 불멸의 신적 존재로 진화해 나아가리라는 전망을 했다.
그러나 인간이 필멸의 존재이든 영속하는 존재이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에게 인간성이 있다면, 그것은 뭘까? 단지 오래 살고 일찍 죽고의 문제가 인간성의 핵심이 될 수는 없다.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한다는 작가의 말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치열하기보다 그저 감성에 쉽게 굴복하고, 안주하려는 자세는 작가로서의 직무유기다. 인간성은 감성 과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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