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감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이주혜 첫 산문집

by 로그라인 2023. 5. 2.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에트르, 2022)는 번역가이자 소설가 이주혜의 첫 산문집이다. 눈물의 쓰임새는 보통 눈물을 흘리다, 머금다, 거두다 등으로 쓰이는데 작가는 대뜸 우리들에게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지 묻는다.

그렇게 물어오니 나 또한 살면서 눈물을 심어본 적도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멜랑콜리할 것 같은 이 산문집을 기꺼이 읽기 시작했다. 

소설가 이주혜 소개

번역가이자 소설가.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16년 단편 <오늘의 할 일>로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 《자두》와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썼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나의 진짜 아이들》, 《온 여름을 이 하루에》, 《초콜릿 레볼루션》, 《레이븐 블랙》, 《프랑스 아이처럼》,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멜랑콜리의 묘약》 등 많은 책을 옮겼다.

책표지
책표지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독후감

이 산문집은 여성의 삶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모색하면서 쓴 글이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작가 자신의 삶을, 2부에서는 페미니즘 작가 17명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며 여성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인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를 고백하자면 P.D. 제임스의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아작, 2018)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 추리소설을 번역하신 분이 이 주혜였던 게 인연이 되었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이주혜 번역의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참고로 P.D 제임스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나란히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추리작가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미국추리작가협회 최고 작품상 수상작이다.

소설가 이주혜는  20대를 학생운동으로, 30대는 출산과 양육으로 보냈고, 마흔이 다되어서야 번역을 시작했다. 소설가로서는 2016년 창비소설신인상을 받으며 늦깎이 데뷔를 했다.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는 '프롤로그: 이야기의 코'로 시작한다. 뜨개질의 세계로 초대하는 한 편의 단편 소설같이 읽히는 이 프롤로그는 남자인 내가 읽기에는 그 정서를 따라잡을 수 없어 숨이 막혔다. 

엊그제 딸내미가 서울 이삿짐에 뜨개질 실이며 뜨개질 용품이 큰 박스로 두 개나 되어서 좀 놀랬다. 골프나 스포츠가 취미인 남자아이였다면 그보다는 더 짐이 많았을 것이었는데, 아마 그랬다면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려니 하고 받아들였을까?

나는 아직 내 딸내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여성 서사를 다룬 에세이나 작품들도 읽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아내의 삶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뒤늦게 반성을 많이 하여 요즘은 아내가 호강(?)하며 산다고 할까?

아무튼,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는 여성을 주 독자로 한 산문집이지만 남자들도 읽어볼 만한 에세이다. 여자는 남자를 만나고, 남자는 여자를 만나는 것이 세상 이치이고 보면 어느 한쪽으로만 성립되는 세계도 없을 것이므로 더욱 그렇다.

다만, 페미니즘 계열의 책을 처음 접하시는 남성들은 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수컷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접했을 때 충격처럼 말이다.

“언어가 없는 곳에 언어를, 빛이 없는 곳에 빛을 들고 찾아가는 자. 이것이 수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밝힌 작가의 정의다.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기본 책무이고 이 기본은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손전등 하나의 역할을 통해〉 162쪽

그러나 이주혜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진실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기본 책무이므로 (수컷이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긴 할 텐데 일단 거부감은 제쳐두고) 오직 그 드러냄이 진실인지 아닌지만을 따져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먼저가 아닐까 한다.

나의 사춘기 시절 최애 소설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작가는 다시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있다. 제인 에어에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버사 메이슨이 괴물처럼 등장하다 실루엣처럼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진 리스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웅진싱크빅, 2008)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게 새로운 이름과 생명을 부여하며 제인 에어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을 펼쳐 보였다. 

이처럼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는 여성들에게는 여성 서사에 대한 내밀한 공감을, 남성들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 너머의 낯선 세계를 어렴풋하게나마 직감할 수 있게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