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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김훈 소설 공무도하와 고대 시가 공무도하가, 줄거리와 해석

by 로그라인 2024. 7. 15.

부고(訃告) 문자를 볼 때마다 나에게는 몇 년의 세월이 남았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라고 썼다.

산문집을 내는 것으로 보아 작가 김훈의 근황은 삭아드는 인생의 단계를 적당히 엄살을 부려가며 건강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김훈은 자주 인생의 고단함과 허망함을 노래했다. 200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공무도하>도 그렇다.

공무도하 줄거리

이 소설의 표지는 독특하다. 작가의 원고지를 겉표지로 삼았는데, 연필을 꾹꾹 눌러쓰는 작가의 필력이 느껴지는 표지이다. 타이핑이 아닌 원고지를 쓰는 그의 고집은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안타까운 헌사이다. 

<칼의 노래>(2001)와 <남한산성>(2007) 등 남성 팬덤을 구축한 김훈은 역사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에서도 크게 다른지 않은 문장들로 독자들을 부른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관념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고 화가가 되었다면 아마도 추상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공무도하 책표지
책표지

<공무도하>에는 이야기의 얼개도, 목차도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문정수 사회부 기자이다. 문정수는 신문 사회면에 실릴만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문정수는 가끔 출판사에서 일하는 노목희를 찾아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인 셈이다. 소방관을 하다 퇴직한 박옥출,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의 어머니 오금자, 지방대를 나와 어쭙잖게 노학운동을 하던 장철수, 베트남에서 시집온 후에, 그리고 노목희가 번역하는 "시간 너머로"의 저자 타이웨이 교수이다.

박옥출은 바다 밑의 고철 인양사업체의 전무이사가 되고, 오금자는 남편과 이혼하고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에게 맡긴 어린 아들의 사망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장철수는 후에와 함께 펄에서 한국 전쟁 때 버려진 포탄과 탄두를 건져 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이들이 살아가는 삶이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김훈은 그들의 이야기들을 사회부 기자처럼 서술한다. 숫자가 뒤섞인 건조한 문장들은 신문 사회면의 기사를 읽는 듯하다.

"지휘차 뒤로 고압펌프차 3대, 사다리차 2대, 앰뷸런스 1대가 따랐다. 심야의 8차선 도로에는 교통체증이 없었다. 서남 소방서 선착대는 02시 10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02시 14분에 공격거점을 확보했고, 02 19분에 고가사다리를 7층으로 전개했다. 사다리는 기립각 69도를 이루었다. 인명구조특공조와 파괴수들이 고가사다리를 타고 7층 옥내로 진입했고 관창수들은 수관을 연결해 가며 중앙계단을 따라 진공했다."
- 공무도하, 98쪽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살아가는 소설 속 공간은 작은 바닷가 마을 '해망'과 경주에서 가까운 '창야'입니다. 굳이 지도에서 찾자면 해망은 평택쯤이겠고 창야는 창녕쯤일 것이다. 그러나 창녕에는 호텔도 지방대학도 없다. 작가는 서울은 그대로 쓰면서 지방도시는 관념적으로 창조했다.

김훈의 문장은 노목희와 문정수의 관계를 묘사한 장면에서는 더 멀고 아득한 관념의 강으로 변한다. 마치 공무도하처럼. 멀고 아득한 저쪽 끝에 흐린 등불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노목희의 몸에서 새벽안개 냄새가 났다. 문정수는 조바심쳤다. 문정수의 조바심이 노목희의 조바심을 일깨웠다. 노목희의 몸은 깊어서 문정수는 그 끝에 닿을 수 없었다. 길은 멀고 아득했고 저쪽 끝에 흐린 등불이 하나 켜져 있는 듯도 했다."
- 130쪽

그럼에도 김훈의 문장은 흡인력이 있다. 이야기의 얼개가 없음에도 무엇인가가 끌어당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없다. 공무도하를 읽으면 인생이 비루해지고 치사하게 느껴진다. 힘겨운 하는 작가도 느껴진다. 밥벌이의 지겨움이 밀려들며 우울해지기도 한다.

고대 시가 공무도하가

공후인(箜篌引)이라고도 알려진 공무도하가의 전문은 매우 짧고 간결하다. 공후인은 한국과 중국의 전통 현악기인 공후를 연주하며 부른 노래라는 뜻이다.

公無渡河歌(공무도하가)

公無渡河(공무도하)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공경도하)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찌할꼬

공무도하가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알려져 있다. 지은이는 백수광부(白首狂夫)의 아내이다. 백수광부는 머리가 흰 미친 남자를 일컫는다. 공무도하가의 배경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정리하면 이렇다.

조선 시대에 뱃사공 '곽리자고'가 새벽녘부터 일을 시작하려는데 백발의 광인이 술병을 들고 강 물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깜짝 놀란다. 그의 아내가 달려와 남편을 말려보지만 백수광부는 오히려 더 깊은 물속에 들어가 빠져 죽었다. 광부의 아내는 공후를 타며 울부짖으며 공무도하가를 부른 후 남편을 따라 물에 빠져 죽었다. 이를 모두 본 곽리자고가 애달파하여 공후인을 지었다.

이 배경 이야기는 중국 후한의 채옹(蔡邕, 133~192)이 엮은 《금조(琴操)》에 처음 등장하고,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열하일기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참고.

아무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한 고대 시가 '공무도하가를 현재를 살아가는 소설가 김훈이 그의 방식대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 소설 <공무도하>이다. 인생이 던적한 삶이라면 당신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볼 것인가.

참고로 '던적스럽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는 짓이 보기에 치사하고 더러운 데가 있다'라고 나와 있다. 

김훈의 장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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