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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한강의 채식주의자 책 줄거리, 나무 불꽃과 몽고반점 해석

by 로그라인 2024. 8. 12.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식욕과 성욕, 그리고 폭력의 근원을 탐구한 연작 소설이다. 주제가 그렇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 읽히고,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있는 구성을 가진 소설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의 구성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중편을 엮은 연작소설이다. 먼저 <채식주의자>가 창작과 비평(2004년 여름호)에 발표되었고 <몽고반점>(이상 문학상 수장작)이 문학과 사회(2004년 가을호), 그리고 <나무 불꽃>이 문학 판(2005년 가을호)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맨부커상(2016년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역본은 위의 중편 세 편을 묶은 소설이다. 그간 한국 작가들의 소설이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은 아래와 같다.

채식주의자 줄거리

소설 <채식주의자>의 문장은 둔중하면서도 날카로운 칼날 같은 것이 서 있어서 흡인력이 꽤 있다. 여린 티가 나는 작가의 외모와는 달리 끝까지 끈질기게 파고드는 집요함이 있다. 아, 1970년생 작가에게 여린 티라는 표현은 좀 아닐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 영혜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아내는 영혜이다.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영혜의 남편이다.

영혜의 남편은 그녀가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했다. 오직 한 가지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채식주의자 표지
2007년 초판본 표지

그런데 어느 날 영혜는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부터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쟁여둔 쇠고기와 돼지고기 삼겹살, 우유, 위생팩에 담긴 오징어들, 장어, 굴비들, 냉동만두를 죄다 내다 버렸다. 그녀가 꾼 꿈은 이랬다.

영혜는 아무도 없는 어두운 숲 속 헛간 같은 건물에서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광경을 보고 무서워한다.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는 붉은 피가 떨어지고 있다.
헛간에서 영혜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고 옷가지와 입과 손에 피가 묻는다.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눈이 번쩍였는데, 자신의 얼굴이 아니란 걸 알고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 채식주의자 본문, 18~19쪽 축약

그날 이후 영혜는 점점 심각하고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남편의 몸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며 잠자리를 거부한다. 영혜의 체중은 점점 줄어들었고 말 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집들이 날, 장인과 장모, 처형댁과 처남댁이 쇠고기볶음과 탕수육, 닭찜, 낙지소면을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장모가 영혜에게 탕수욕을 권하고 처형이 굴무침을 권하며 거들었다. 하지만 영혜가 고기를 안 먹는다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장인이 영혜의 뺨을 억세게 때렸다.

그리고 장인은 처남과 매형에게 영혜를 붙들게 하고는 한번 더 빰을 때린 후 탕수육을 영혜의 입에 강제로 쑤셔 넣었다.영혜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지른 후 과도를 들어 손목을 그었다. 장모는 혼절하고 영혜는 병원에 입원한다.

영혜의 어머니는 입원한 딸에게 흑염소를 한약이라며 권하고 한 모금을 마신 영예는 화장실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뱃속에 들어간 것을 모두 게워냈다.

다음날 영혜는 병원 분수대 앞 벤치에 환자복 상의를 벗어 무릎에 올려놓은 채 왼쪽 손목의 붕대를 풀어 봉합 부위를 천천히 핥고 있었다. 그녀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치자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쟈나가고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는 작은 동박새 한 마리가 떨어졌다.

몽고반점

중편 <몽고반점>의 주인공은 영혜의 형부이다. 그는 지금껏 그럴듯한 성과물을 내지는 못했지만 보디페인팅된 벌거벗은 남녀의 나신들을 소재로 미디어 아트를 하는 예술가이다.

어느 일요일, 그는 아내로부터 영혜가 스무 살까지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었다는 소리를 듣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처제의 알몸을 상상하며 알 수 없는 성욕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예술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형부가 행위 예술을 제안을 하자 영혜는 대수롭지 않게 수락하고, 그는 영혜의 몸에 꽃을 수놓고 후배 J에게 모델을 부탁하고 촬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J는 행위예술을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실제로는 하지 못하겠다며 작업실을 떠난다. 

채식주의자 본문
채식주의자 본문(욕망이 배제된 육체)

예술적 열망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영혜와 관계를 가지며 그 모든 장면들을 캠코드로 촬영한다. 둘은 그대로 잠들었고 다음 날, 영혜를 만나러 온 아내가 캠코드에 담긴 모든 장면을 본다.

아내는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며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애를, 나쁜 새끼"라고 중얼거렸다. 엠뷸런스의 사이렌이 가까워지고 여러 개의 급한 발소리들이 층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내가 정신이상자를 데려가달라고 구급대를 부른 것이었다.

나무 불꽃

<몽고반점>에서 영혜는 남편과 이혼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형부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유치장에 구금되었다가 수개월의 후에 풀려나 잠적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영혜는 가족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나 언니는 그녀의 병원비를 내주고 매주 찾아간다.

비가 쏟아지는 날, 영혜는 병원 산책 시간에 갑자기 사라진다. 영혜는 비 오는 숲 속에서 나무처럼 서 있었다고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본문 156쪽

그리고 의사는 영혜가 정신분열증이면서 음식을 거부하는 특수한 증상을 보인다며 약도 전혀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언니에게 말한다. 영혜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 링거바늘도 뽑아버리고 물구나무를 서는 기괴한 증상을 보인다.

"언니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딸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고.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본문 179쪽

영혜는 자신을 동물이 아닌 나무라고 생각한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햇빛만 있으면 살 수 있는 나무라고 생각한다. 영혜는 튜브를 격렬하게 저항하다 결국 위출혈이 발생하여 구급차에 실려 서울 큰 병원으로 이송되며 소설은 끝난다. 

채식주의자 해석

줄거리만 톺아보면 이 소설은 채식주의자가 아닌 정신분열증을 지닌 거식증 환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영혜가 기괴한 꿈을 꾸고 난 이후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고 서서히 말라가고 나무가 되어간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무의식과 꿈의 관계에 비추어보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영혜의 무의식이 그런 꿈을 꾸게 하였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압박이 영혜의 증상 발현을 더욱 부채질하고 심화시켰을 것이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다른 생명을 먹음으로써만이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그 과정은 상당히 폭력적이다. 생존하려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폭력성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영혜의 형부는 영혜의 몽고반점에 성욕이 발화되고 예술적 열정에 사로잡혔다. 몽고반점은 세 살과 다섯 살 사이에 대개 사라지며 사춘기가 되면 거의 다 없어진다. 영혜가 나무가 되고 싶었다면, 그에게는 어린애가 되어 다시 무로 귀향하고 강한 욕망이 잠재되어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세 주인공 중에서 영혜의 언니(김인혜)만이 목적을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영혜처럼 기괴한 꿈을 꾸지도 않았고 그녀의 남편처럼 이상한 열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이는 인혜이다. 열망에 사로잡힌 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자의 아픔이 그것이다. 작가 한강이 이 소설을 쓸 때 정신분석의의 검토를 거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픔도 이 소설에 잘 그려져 있다.

아무튼, 독자들은 영혜처럼 기괴한 꿈을 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몽고반점에 과한 의미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맨부커 심사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며 이렇게 평했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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