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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박지원 열하일기 줄거리, 고미숙의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청소년 도서

by 로그라인 2024. 7. 7.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꼽으라면 아마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아닐까 합니다. 연암 사후 정리되어 출간된 이 책은 초고본 시절부터 필사본이 나돌면서 조선의 시대정신을 뒤흔든 문제작이 되었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시도된 연암의 파격적인 글쓰기는 정조가 문체반정 정책을 시행하면서 그 주동자로 연암과 <열하일기>를 지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이 편찬한 종합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보고서 "연암의 문체를 본떴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열하일기>가 그 당시 얼마나 센세이셔널했던가를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열하일기 줄거리

1780년 5월, 영조의 사위이자 연암의 삼종형 박명원이 정사로 이끄는 청 건륭황제의 70세 만수절 축하 사절단에 박지원(1737-1805)이 박명원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연행길에 오르게 되면서 <열하일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사절단의 일원으로 음력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8월에 북경에 들어가 귀국하기까지의 여정(1780. 6. 24.~ 8. 20)을 상세하게 기록한 여행문집입니다. 참고로 열하일기에는 구멍이 있는데요. 사절단이 출발한 1780년 5월 10일부터 6월 23일까지의 일정은 <연행음청(곤)>(1780. 5. 10. ~ 7. 30)에 기록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단국대학교 2023년)

열하일기는 제목과는 다르게 단순한 일기 그 이상의 기록입니다. 상세한 여행 일정은 물론이고 청과 조선의 문물 비교와 실용주의 사상, 온갖 해학과 외전들, 심지어 박지원의 소설 중 <호질>과 <허생전>도 실린 그야말로 당대 시대정신을 아울러는 총서라고 할 만한 기록입니다.

열하일기 책표지
열하일기 책표지

제목으로 쓰인 열하는 오늘날의 허베이성 청더시를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베이징에서 동북쪽으로 250km 떨어진 허베이성은 옛날에  황하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하북성으로 불렸고, 청더시는 박지원이 사절단으로 가던 당시에는 강의 이름을 따 열하(熱河)로 불리던 도시였습니다.

조선의 사절단은 청 건륭황제가 연경(오늘날의 베이징)에 있는 줄 알고 갔는데요. 막상 사절단이 연경에 가서 보니 건륭황제가 열하로 피서를 가버려서 연경에서 형식적으로 축하를 하고 조선으로 돌아갈 것인지, 열하까지 갈 것인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열하일기에 나옵니다. 알고 봤더니 청 황제들은 여름이면 청더시에서 황제 전용 산장에서 피서를 즐겼던 것이지요. 피서 산장은 오늘날로 치면, 미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쯤이라고 할까요· · ·.

아무튼 조선 사절단이 우여곡절 끝에 청 황제를 따라 열하까지 가기로 결정한 덕분에 박지원의 필생의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열하일기>가 탄생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미숙 편역, 열하일기 독후감 

열하일기에 나오는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와 같은 연암의 문장이 우레처럼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일전에 원전 읽기를 시도하였다가 그만 중도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열하일기가 생각나고 그때마다 들춰보곤 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그 책을 각주 없이 읽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매번 깨닫습니다.  

하여 읽기 쉬운 책으로 고른 것이 고미숙의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아이세움, 2007)입니다. 참고로 2013년  개정판이 나왔네요. 이 책은 26권 10 책으로 구성된 <열하일기>에서 고전 평론가 고미숙이 10편을 뽑아 청소년들이 고전문학을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연암 박지원에 대한 배경 이야기들을 곁들여 엮어 놓았습니다. 

저자 고미숙은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고전 문학 연구에 매진해 오신 분인데, 최근에는 의역학 분야로 빠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그전에 출판된 책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청소년 도서로 추천할 만합니다.

저자는 18세기 조선 지성사의 지적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열하일기>라고 합니다. 북벌론으로 무장한 '사대교린'이 지배하던 조선의 시대상황에서 북학파 연암이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문명의 비전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여정과 함께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에서도 연암의 문장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밀한 관찰력과 끊임없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연암의 문장들을 저자 나름으로 엄선하여 싣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20세기 초 <연암집>을 펴낸 창강 김택영이 <삼국사기>의 '온달전'과 더불어 오천 년래 최고의 문장이라고 격찬한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記)'의 한 구절입니다.

"때마침 상현이라 달이 고개에 드리워 떨어지려 한다. 그 빛이 싸늘하게 벼려져 마치 숫돌에 갈아 놓은 칼날 같았다. 마침내 달이 고개 너머로 떨어지자, 뾰족한 두 끝을 그러 내면서 갑자기 시뻘건 불처럼 변했다. 마치 횃불 두 개가 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북두칠성의 자루 부분은 반쯤 관문 안쪽으로 꽂혔다. 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긴 바람이 싸늘하다. 숲과 골짜기가 함께 운다(…) 하늘 저편에서 학 울음소리가 대여섯 차례 들려온다. 맑게 울리는 것이 마치 피리 소리가 길게 퍼지는 듯하다. 누군가 말했다. "고니 소리네"(153-154쪽)

고북구는 청나라 때 베이징과 열하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고 하는데요. 위 인용은 연암이 고북구 장성을 지나며 썼던 글입니다. 고북구 장성은 진나라 이후부터 송, 원, 명에 이르기까지 북방 오랑캐들과 수많은 싸움이 벌어졌던 관문이었습니다. 

고북구 장성을 오르며 연암은 거대한 제국의 역사와 전장의 무상함을 달래려고 벼루에 술을 부어 먹을 갈아서 장성 벽 한 귀퉁이에 이렇게 썼다고 해요.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야삼경, 조선의 박지원, 이곳을 지나노라." 

이 대목을 비롯해 연암의 문장을 읽으면서 역사 속 인물이었던 박지원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의 호방함과 기벽,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함과 빛나는 문장으로 이어가는 철저한 기록 정신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편안하게 방구석에서 쓰는 블로그도 2년 전 오늘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6개월 정도 반짝하고, 거의 1년 반을 내팽개치고 말았는데, 저의 불성실함을 많이 자성하게 하는 책이 <열하일기>입니다.

한 여름 장대 같은 비 소리가 들리는 밤, 열하일기를 읽어보신다면 245년 전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통해 18세기 청과 조선의 시대상을 음미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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