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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5년 일기장, 매일 다섯 줄 디지털 일기 쓰기

by 로그라인 2022. 8. 29.

지난 일기를 보면 항상 자괴감이 든다

7월 2일 토요일, 폭염주의보

아내는 하루 마무리로 일기 쓰기에 열심이다. 5년을 쓸 수 있는 일기장이라 꽤 두툼하다. 첫 장에 'yearly jounal for 5 years'이라 적혀 있다. 각 쪽마다 위에 날짜가 쓰여 있고, 아래로 다섯 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 년을 쓰고 나면, 다시 처음 쪽으로 돌아와 일 년 전 오늘의 일기를 보면서 두 번째 칸에 일기를 쓰는 방식이다.

이제 5년 일기 쓰기는 아내의 리추얼 라이프가 되었다. 벌써 6개월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 왔으니까. 아내의 5년 일기 쓰기를 모범으로 삼아 티스토리 블로그에 5년 일기장을 이렇게 만들고 쓰기로 했다. 나의 디지털 5년 일기도 5일을 쓰고 나면 묶어서 글 하나를 발행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아이들 방에만 에어컨을 켜다 오늘은 거실에도 에어컨을 틀었다. 며칠째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것 같다. 어젯밤에는 창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놓고 자기 시작했다.

딸내미가 5년 일기장을 선물했고 북커버도 선물했다.

7월 3일 일요일, 삼시세끼

체감 온도가 35도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는 걸 느꼈다. 아들과 라면을 먹고 취나물을 겨우 무쳐 점심을 때웠다. 침대에서 나른하게 한참 뒹굴다, 하는 수없이 전통시장에 가서 곰국과 마늘을 사 왔다. 잔멸치를 볶아 반찬을 만들었다.

7월 4일 월요일, 소나기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었다. 현관을 나서자마자 소나기가 우두둑 떨어졌다. 폭염 속 소나기가 어찌 그리 반갑든지. 가게 앞 좁다란 정원이 인상적인 식당이었다. 8천 원에 삼계탕을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16천 원이라니, 요즘 고물가를 실감한다. 아들이 백제 계삼탕보다 이 집 삼계탕이 더 맛있다고 했다. 2천 원 더 비싼 값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와이프가 야근인지라 짜장 카레를 만들어 아들과 둘이 먹었다. 감자 두 개, 양파 한 개, 애호박 한 개, 당근 두 개를 네모나게 쓸고, 돼지고기와 볶아서 오뚜기 짜장 가루 수프를 넣으면 끝나는 간단한 요리다. 그런데도 선 듯하기가 어렵다. 아직은 요린이라 그런 걸까? 요리를 할 때는 국물이 많아 보였지만, 적당량이었다.

7월 5일 화요일, 하얀 밤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며칠 동안 그래도 늦게나마 잠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앵앵거리는 모기 때문에 그르치고 말았다. 동이 트니, 닭 울음소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소리로 대기가 빽빽해진다. 청량한 소리를 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앙증맞고 작은 소리를 내는 놈도 있다. 새소리도 각양각색이다.

이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나면, 하루가 그만 엉망이 되고 만다. 아침은 그래도 시원하다.

아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두툼한 5년 다이어리

일기 쓰면 좋은 점

위의 일기들은 블로그 '로그라인'의 프롤로그인 셈이다. 아내가 5년 일기를 열심히 쓰는 걸 보고, 그렇담 나는 블로그에 5년 일기를 써야지, 흉내 내며 써본 것이다. 맨 위 사진은 아내가 8월 28일, 어제까지 5년 일기를 쓴 것을 찍은 사진이다. 아내가 워낙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쓰느라 돋보기를 써도 내용을 알아볼 수가 없다. 내가 작을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다는 걸 아내가 알고는 더 작은 글씨로 쓰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아마도 남편 욕하는 것이 태반이겠지만. ㅋ

아내는 처녀 때부터 일기를 써 왔다.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처자였다. 장인어른도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일기를 쓰곤 했으나, 아내의 성실함에 견주면 새 발의 피다. 

7월 2일 시작한 디지털 일기 쓰기도 나흘 만에 관뒀다.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 도대체 뭐가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쓴 일기장을 시간이 조금 지나 들여다보면 어? 내가 이런 걸 왜 썼지? 하는 생각이 들며 쪽 팔리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특별한 내용도 없고, 이걸 일기라고 쓰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자괴감이 심해지면 급기야 블로그조차 완전 폐쇄하게 되는 사태를 몇 번 겪었었다. 블로그도 본질적으로는 일기와 같은 류이므로.

내가 발견한 일기 쓰기 좋은 점, 효용은 딱 일기를 쓰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 외에는 없었다. 이 무용한 하루하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뭔가 기록하고 있다는 나름의 안도감, 같은 것 말고는 일기를 쓰면 좋은 점이라곤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또다시 일기를 쓰곤 한다. '기록'하는 행위에 유혹당하는 유전자가 내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블로그에 열심히 글도 올리고 있겠지 하는 생각.

1999년생 차도하 시인의 첫 에세이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았는데, 우선순위에 밀려 아직 펴보질 못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나를 포장해서 많이 썼다. 아는 게 좀 많은 척? 션한 척? 개뿔도 없으면서 몬가 있어 보이려는 노력을 많이 하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다보니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에는 과연 어떤 메타포를 풀어 놓았는지 벌써부터 막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제발 제목 빨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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