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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경쟁에 내몰리는 청년들

by 로그라인 2022. 8. 27.

아내와 야간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딸이 전화를 했다. 감기가 걸렸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느라 매일 새벽 다섯 시에 고시원으로 들어간다더니 새벽바람이 추웠나 했다.

"아빠, 팀을 어떻게 나누는지 내가 이야기했었나?"
"아니, 안 했던 것 같은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팀이 어떻게 나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시험을 쳐서 두 개반으로 나눈다는 걸. 그 시험을 준비하느라 딸은 매일 새벽 다섯 시에야 고시원으로 갔다.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까 내심 기대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상위 반에 못 들어가면 딸이 자존감에 상처를 깊게 입을 것 같아서였다.

"아빠, 시험을 쳤는데, 상위 팀에 못 들었어. 그래서 한 달 동안 재교육받고 프로젝트는 한 달 뒤에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순간, 갑자기 다리에 맥이 풀렸다. 근처 벤치에 앉아 스피커 폰을 켰다. 아내가 "우리 딸 너무 실망하지 말고, 엄마는 우리 딸이 그 연수 팀에 선발된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프로젝트 팀 진행은 과정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쩌고 저쩌고 위로를 했다. 대답하는 딸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나까지 위로를 하면 딸이 울먹일 것 같아 나는 가만히 있었다. 딱히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세상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딸이 프로젝트 시험을 치는 날은 공교롭게도 아들이 교수와 석박사 생들을 모시고 연구 결과를 PPT로 보고하는 날이었다. 한 시간 가량 이어진 발표 후에 교수님이 "문제 설정을 잘해서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잘했어"라고 멘트 했고, 점심을 교수 식당에서 먹었다며 자기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것처럼 아들의 기분은 업되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치 내가 그 교수님들이랑 같이 식사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 딸의 전화는 내가 상위 팀에 못 들은 것처럼 열패감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이러한 나의 마음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마도 나의 반응에서, 내가 티를 내지는 않아도,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딸은 "아빠, 너무 큰 기대는 말아요. 큰 곳으로는 못 갈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초등학교 때 담임쌤이 보내 준 사진, 아빠 닮아 혼자 정면을 보지 않는 딸, 개구쟁이로 환하게 웃는 딸이 그리운 밤.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격려한답시고 칭찬하며 '너희들은 대단하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은 부모들의 기대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있지만, 그 기대감마저 아이들에게 비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아마 사춘기 무렵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우리 아이들을 여전히 '아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아이가 잘했을 때도, 못 했을 때도 무덤덤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아이가 잘 못 했을 때, 아빠가 덩달아 위로라도 하려 들면 아이들은 배로 상처를 받는다. 그래도 오늘은 나로서는 최대한 잘한 것 같다. 딸이 미안한 듯 "시간이 날 때, 언니들이랑 경주 1박 2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가도 돼?" 했을 때, '그럼, 연수도 중요하지만, 그런 여행이 네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경험'이라고 했으니까.

경쟁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집권 여당의 젊은 대표 얼굴을 볼 때마다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저런 소리를 하고 다니나 했다. 하긴 이제 대표도 뭣도 아니게 됐다.

또 엊그제 집권 여당의 연찬회에서 강사로 초빙된 작가(라고 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지만) 이지성은 “국민의 힘에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배현진 씨, 나경원 씨가 있지만 왠지 좀 부족하다. 김건희 여사로도 부족하다. 당신(이지성의 아내)이 들어가서 4인방이 되면 끝장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 말은 지 마누라가 경국지색이란 말인데, 조선시대도 아닌데, 세상을 색으로 어찌 할 수 있다는 아주 더러운 발상이 아닌가 싶었다.

작금의 주류 세력이라는 자칭하는 것들은 왜 '경쟁'이 제일이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이 최고라고 생각할까? 뭐든 경쟁이다. 능력도 경쟁이고, 외모도 경쟁이라는 태도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 시대의 청년들은 온갖 불안과 두려움으로 시달리고 있는데, 꼭 저렇게 지 잘났다고 똥폼을 잡아야 할까 절망스럽다. 하긴, 세상은 어차피 파이가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든 나누어야 하고, 어떻게 나누는 것이 제대로 나누는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저 방법들은 아니라는 걸 누구나 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요즘 길을 가다, 청년들을 보면 우리 아이 생각이 절로 난다. 부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 깊은 상처는 입지 않고 내일을 준비해 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술을 마시며 쓰는 글이라 비문이 많고 오타도 많다. 이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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