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연구원으로 참여한다고 아들이 전화를 했다. '학생연구원'이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 들었기에 생소했다. 딸아이가 대학 2년 때 연구실에 알바를 한다고 했을 때, 그냥 그려러니 했었다. 조금 찾아보니 딸아이가 연구실에 알바를 했던 것도 학생 연구원 신분으로 참여한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
아들은 올해 전문 자격시험과 대학원 일정도 놓쳐버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고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모 교수님이 학생 연구원이라고 하는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모양이다. 학생 연구원이 되려면 졸업을 한 학기 미뤄야 했다. 어차피 대학원을 가려면 내년 가을 학기이므로 한 학기 미뤄도 하자는 없는 듯했다.
학생연구원 가이드라인
찾아보니 2020년 1월 2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학생인건비 통합관리 지정기관을 대상으로 「학생연구원 내부 운영 규정」 가이드라인이라는 걸 만들어 놓았다.
학생인건비 통합관리 지정기관이란 학생인건비 집행의 효율성 제고 및 안정적 인건비 확보 등을 위해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학생인건비를 통합(풀링)하여 관리·집행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가 지정한 대학 53개와 과학기술원 4개, 출연연 2개를 말한다.
동규정에서 말하는 학생연구원이란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생을 말한다. 딸은 학사 과정생으로 학생연구원이 되었을 것이고,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학생연구원 내부 운영 규정
「학생연구원 내부 운영 규정」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각 대학들은 스스로 학생연구원 제도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자체 규정을 마련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53개 대학은 자체 학생 원구원 관련 규정을 제정했을 것이다.
학생연구원 내부 운영 규정은 지도교수가 학생연구원과 협의하여 연구 참여 확약을 체결하고 신의와 성실에 따라 준수해야 하고, 학생연구원을 성실히 지도하고, 연구윤리 및 연구보안을 준수할 것과 학생연구원에 대한 학생인건비·연구수당 지급,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권리 보장 등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학생연구원은 연구책임자(지도 교수)의 지도에 따라 연구 참여확약서에서 정한 담당업무를 신의와 성실에 따라 수행하고, 연구 수행 시 관련 규정을 준수하고, 특이사항은 연구책임자에게 보고할 책임을 진다.
학생연구원 인건비 지급 기준
동 가이드라인은 학생연구원 학생인건비 지급 기준으로 「학생인건비 계상기준(과기정통부 고시)」에 따라 연구기관이 참여율 100% 기준으로 학사과정 월 100만 원, 석사과정 월 180원, 박사과정 월 250원을 제시하고 있다.
딸내미는 월 70만 원 정도 받은 것 같다. 딸내미가 참여한 연구에는 외국에서 온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1명이 함께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학사였던 딸은 100%를 인정받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수업 외에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연구비에 좀 의아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들의 석박사 과정 학생들의 인건비 횡령이나, 괴롭힘의 사례들이 심심찮게 뉴스에 보도되곤 했다. 2019년 설문조사를 보면, 학생 스스로 자신을 학생 근로자로 인식하는 비율도 66.1%(2015년)에서 80.8%(2019년 조사)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들에게 연구 참여확약서는 작성했느냐? 학생 인건비는 어느 수준에서 책정되었느냐는 물을 수가 없었다. 석박사생이 아닌 학부생에게 '인건비'라는 용어를 써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들의 처지를 고려해서 '선의'에서 비롯된 제안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그 교수 님을 나름 좋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언제나 학생들에게 겸손한 태도로 강의를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도 열린 과학자적인 자세를 취하시는 교수님이라고 평했다. 늦게 만났지만 그 교수님이 네 멘토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나도 말해 주었다.
그렇지만, 법령은 아니지만 규정이 있다면 규정대로 하고 있는지, 규정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다수 학생연구원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는 왕이라는 말을 종종 들은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지성적이어야 할 대학에서조차 갑과 을의 관계에서 아직까지도 벗어나기 못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과학하는 자세
기원전 600년과 400년 사이,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아리스타르코스로 대표되는 이오니아 사람들은 신들의 영광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의 힘으로 실험과 증명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했다.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이들 지성의 계보는 중세 교회의 오랜 박해와 탄압을 받고 현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활하고 있다.
나는 공학의 세계는 잘 모른다. 우리 가족은 나 빼고 모두 공학도이다. 그럼에도 과학 하는 그 자세만은 높게 평가를 해야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신의 섭리가 아닌,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만으로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대학에서만큼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이기에 누구는 응당 왕이 되고 싶고 신이 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전당에서는 그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왕이 되고 싶은 자, 이미 정치판으로 몰려갔겠지만 아직도 출세의 발판으로,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학문의 전당에 기생하고 있는 무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망원경 하나 없이도, 현미경 하나 없이도 명민한 지성들은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었다는 걸 상기해 보면, 현 세기에도 혼탁한 세상을 헤매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성질을 가진 존재들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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