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과 은혼에 대하여
졸혼(卒婚)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유행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혼인 건수와 이혼 건수는 통계에 잡히지만 졸혼 건수는 통계에 잡히지 않으니까. 다만, 각자의 감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졸혼이라는 용어는 일본산이다. 2004년 스기야마 유미코의 <졸혼을 권함>(卒婚の ススメ)이 출간되면서 처음 등장했다. 졸혼은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이지만 법률적인 혼인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는 애매모호한 부부 관계이다.
우리 민법은 부부간의 의무로 ①동거의무, ②부양의무, ③협조의무,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법에 규정은 없지만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성적 성실의무'(정조의무)를 부부간의 의무라고 판시했다.
대한민국 민법 제826조(부부간의 의무)
①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서로 인용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는 ①동거의무, ②부양의무, ③협조의무, ④정조 의무를 준수해야 법률상 부부로 쳐준다. 네 가지 의무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심각하게 내 몰라라하면 이혼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졸혼 부부의 사례를 보면 부양의무는 대개 제외하고 세 가지 의무로부터는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자의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즐기자는 것이 졸혼의 중요한 모토가 된다.
그렇다면 졸혼의 욕망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부부간의 과한 의무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추정해 본다.
①, ④인생의 대부분의 기간을 한 남자 또는 한 여자하고만 동거하며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수도승이 아닌 다음에야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고,
③서로 협조하며 살아가라고 했는데, 어느 일방이 자신만 과도하게 희생하며 살아왔다는 통렬한 자각이 일어났을 경우에 졸혼을 욕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부부간의 의무가 지겹다면 깔끔하게 이혼을 하면 될 것이지 굳이 왜 졸혼이라는 어정쩡한 관계를 선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이 들어 이혼하자니 사회적으로 쪽팔리고, 무엇보다 재산분할이 생각보다 너무 복잡해서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졸혼은 사실, 법률상 아주 위태로운 지위이다. 상대방이 언제든 마음을 뒤집어서 배우자가 정조의무를 저버렸다며 이혼청구 소송이라도 제기하는 날에는 재산을 다 털릴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오래전부터 각방을 써왔으니 광의로 보면 ①동거의무는 오래전부터 방기했던 것 같다. ②부양의무는 언제나 복잡한 문제니까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③협조의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요즘 들어서 왠지 부쩍 나만 희생하는 것 같다. ㅋ
④정조 의무는, 글쎄 능력이 되지 않으므로 지켜야 할 정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항목 역시 유감스럽지만 'ㅋ'를 붙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 부부도 졸혼인가? 학업 수행은 고단하고 지겨우니 말로나마 위로해주기 위해 '졸'자를 붙여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자 졸(卒)은 삭막하다. 졸은 마치다라는 뜻과 함께 죽다라는 뜻도 있다.
아울러 뭔가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졸혼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애매하다.
은혼 시대
나는 졸혼이라는 어감보다는 은혼이라는 말이 더 좋다. 은퇴할 때 그 '은' 말이다. 혼인관계에서 은퇴한다는 것, 조금은 낭만적이지 않은가? 은혼은 다음 단계도 없다. 그냥 혼인에서 은퇴할 뿐이니까. 삶에서 은퇴하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듯이.
오늘은 은혼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으니 그냥 은혼 시대가 시작되었다고만 해두자.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서글퍼진다. 졸혼이든 은혼이든 살면서 상처받은 쪽이 먼저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부부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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