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김영사, 2023)는 작가가 지난 13년 동안 글쓰기 수업과 강연을 하며 자주 받은 질문들 중 생활 속에서 좋은 글쓰기에 도움 될 만한 48가지의 요령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은유 작가가 글쓰기 수업 '감응의 글쓰기', 메타포라' 등을 진행하고 한겨레 신문과 경향신문, 시사IN 등 여러 매체에 인터뷰 기사 및 칼럼을 연재해 오면서 체득한 글쓰기에 대한 산경험들이 녹아있다.
저자 도서 목록
은유 작가는 글쓰기 3부작 <글쓰기 최전선>, <쓰기의 말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산문집 <올드걸의 시집>, <싸울 대마다 투명해진다>, <다가오는 말들>,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 <출판하는 마음> , <크게 그린 사람> 등을 펴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축약 인용해 본다. 블로거니까 이 부분이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았다.
"블로그를 만들고 하루 방문자 수가 100명을 안 넘고 서너 달은 지나야 댓글 하나 달리는 적막한 블로그에서 5년 이상을 보냈어요. 고요한 절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 면벽 수행하는 스님처럼 혼자 글을 썼습니다.
그런 제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방문자 수를 늘리려고 애쓰지도 않았고요. 쓰는 행위만이 목적이었어요. 글 한 편에 코 박고 완성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내키는 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기도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마음껏 실패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이라도 블로그에는 꼭 완성했다고 할 만한 글을 올렸어요."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첫 꼭지, 혼자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나 또한 방문자를 늘리려는 댓글 소통은 아예 하지 않고 있으니 작가의 말이 인상적일 수밖에. 홀로 글을 쓰니까 비난이나 칭찬에 연연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제 고유한 부분이 훼손당하지 않고 복잡한 생각들이 활자로 가지런히 정돈된 글들을 보니까 쾌감과 함께 자신감도 생기더라는 작가의 말은 절로 공감이 되었다.
글을 잘 쓰려는 목적은 제각각일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멋진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수필집 한 권이라도 내보기 위해서, 하다못해 블로그에라도 글을 올려보고 싶어서(이게 나임, ㅠ) 등등.
글쓰기 초심자 가이드
요즘은 글쓰기 목적에 깔맞춤 한 다양한 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출판되어 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글쓰기 초심자를 위한 기초적인 글쓰기 요령 안내 가이드에 방점을 찍은 책이다.
이 책에는 글은 쓰고는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글감은 또 어떻게 고르는지, 재능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지,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는데 맞는 말인지,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 좋은 글인지 등등 글쓰기에 진입하면서 초심자가 궁금해할 법한 사항들이 정리되어 있어서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많다.
사실,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동어반복적인 내용들이 많다. 아마도 그것은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독다작다상량((多讀多作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이 좋은 글쓰기의 금과옥조가 된 지는 오래다. 문제는 무슨 책을 많이 읽고, 어떻게 많이 쓰고, 어떻게 생각을 많이 할 것인가이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서 작가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 요령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은유 작가 나름으로 변용한 '다독다작다상량 방법론'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은유 작가 식으로 요약하면 주저 없이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고 매일 쉬지 않고 계속 글쓰기 근육을 키워라는 것이다.
좋은 글쓰기의 화룡점정, 퇴고
예컨대 글쓰기의 마지막 과정인 퇴고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온전히 노트북 앞에 앉아 원고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총 열 시간 정도 걸린다고 가정하면, 초고를 쓰는 데 한 서너 시간 걸리고, 퇴고하는 데 한 예닐곱 시간 걸리는 것 같아요. 초고의 퇴고의 비율이 4대 6 정도이죠.
처음엔 초고 작성에 시간을 더 들였어요. 그런데 글을 쓰기만 한다고 글이 아니라는 것, 글은 자꾸 고쳐야 글다워진다는 걸 인지하고는 퇴고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에서 옆길로 새지는 않았는지,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는 들어갔는지, 문장은 잘 다듬어졌는지, 이 세 가지를 퇴고과정에서 염두를 두고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합니다. "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42쪽 ~ 16쪽 발췌 인용
나는 블로그 글 한 편 쓰는데 대개 서너 시간 걸린다. 글을 쓰다 보니까 저자의 말처럼 퇴고의 시간들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타나 중복으로 쓰인 어휘 정도만 점검하다가 가끔 전체 얼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갈아엎고 다시 쓸데도 있다. ㅠ 어쨌든 글은 정성을 들이면 완성도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여담으로 퇴고의 끝판왕은 단연 전쟁과 모험을 탐닉한 소설가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1899-1961)였다.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쓰면서 무려 47가지의 서로 다른 결말을 담은 버전을 쓰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제일 첫 번째 초안은 이랬다. "모든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캐더린은 죽었고 당신도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다." 그러다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는 버전과 캐서린이 세상을 떠난 다음 날의 이야기를 전개한 버전도 있다. 헤밍웨이가 선택한 마지막 결말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문을 닫고 불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각상에게 작별을 고하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나는 문을 열고 나가 병원을 떠났고 빗속에서 호텔로 되돌아갔다."
- 무기여 잘 있거라, 마지막 문장
헤밍웨이가 개척한 하드보일드 문체는 그냥 태어난 게 아니었던 셈이다. 대가가 이럴진대 평범한 이에게 퇴고의 중요성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튼,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글을 쓰고자 하는 당신에게 손짓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다면 같이 손잡고 쭉 글을 쓰는 존재로 살아가보자고.
예전에 저자의 <글쓰기 최전선>(2015)을 읽긴 읽었는데 무엇을 읽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나의 모토는 '책을 읽었으면 기록으로 남겨라.'이다. 이렇게 쭉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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