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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시인 문정희 신간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by 로그라인 2023. 6. 24.

시인 문정희의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민음사, 2022)는 <작가의 사랑>(민음사, 2018)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간 시집이다. 어느덧 등단 53년을 맞이하는 노시인의 노래가 세월처럼 흐르고 있는 시집이다.

문정희 프로필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다산의 처녀'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여러 문학상과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상 등을 수상했다.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 시극집 '도미' 등 14권이 시집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

이 시집에 실린 가장 짧은 시, '인생'을 아내가 웬일인지 낭송해 주었다. 출간 당시 75세였던 시인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강렬하게 담긴 시였다. 인생이 짧듯 시 또한 짧은 시가 긴 여운을 남겼다.

인생 / 문정희

확! 살아 버려야 해
획! 가 버리거든

허공에 
쫘악!
눈부신 줄 하나 긋는


활 활 타며 사라지는
운석처럼

시인은 여러 문학상들을 수상했는데, 영광이나 명예, 그 덧없음을 노래하는 시들도 이 시집에 여러 실었다. 언제나 매 순간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나'가 되어 새로운 '시'를 쓰고자 노력했던 시인은 눈부신 줄 하나 긋는 별이 되고 싶어했다. 활 활 타며 사라지는 운석처럼.

이 시는 이미 고희를 넘어서버린 시인 문정희가 독자들에게 애달픈 마음으로 전하는 인생의 아포리즘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확! 살아버려야 한다고, 획! 가버리는 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활 활 타며 사라지는 운석처럼 눈부신 줄 하나 긋는 게 인생이라고. 

눈송이 당신

돌이켜보니까 허공에 눈부신 줄 하나는커녕 희미한 점 하나도 찍지 못한 인생이다. 그러니까 이 시는 영혼이 별처럼 맑고 투명한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시이다. 이미 늦어버린 인생들을 위한 시는 따로 있다. 이 시집의 표제 시 "눈송이 당신"이다.

눈송이 당신 / 문정희

처음 만났는데
왜 이리 반갑지요
눈송이 당신
처음 만져보는데
무슨 사랑이 이리 추운 가요
하지만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요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아요
발자국도 없이 내 곁에 온
하늘의 숨결
눈송이 당신
슬며시 당신을 좀 먹고 싶어요
당신이 눈부심을
당신이 차가움을 혀로 핥고 싶어요
이윽고 당신의 눈물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녹아들고 싶어요

오늘은 좀 추은 사랑도 좋을 것 같은 날이다.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 같지만, 당신은 발자국도 없이 내 곁에 왔으므로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순 없지만 하늘의 숨결인 눈송이 당신을, 당신의 눈부심은 물론이고 당신의 차가움도 혀를 핥아 당신의 눈물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녹아들고 싶다고 시인은 말한다.

권말에 실린 작품해설에서 문학평론가 최진식은 '하늘이 쓴 위험한 경고문'을 시적 착상의 기념비를 뜻한다고 해석하지만, 아마도 시인은 당신의 눈물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녹아드는 자연으로의 영원한 회귀를 예비하는 단계로서 경고문을 읽고 있는 것 같다.

노시인은 여성 작가로서 거칠고 먼 길을 헤매며 걸어왔다. 시집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에는 아마도 당신의 마음을 사정도 없이 획 부여잡으며 당신을 울리는 시 한 편은 들어 있을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시들은 '침묵이 쓰고 뼛속에 뚫리는 구멍에서 태어나는 피리 소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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