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데코의 <사지 않는 생활>(노경아 옮김, 스노폭스북스, 2022)은 미니멀 라이프 실천을 돕기 위한 가이드북이다. 책 제목이 다소 과격한데, 저자는 쇼핑 습관을 바꾸고 물건을 잘 정리해서 버리는 생활을 습관화하면 사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일단은 가능하다. 최근 3년 동안 옷을 비롯한 내 개인적인 용도의 제품은 하나도 사지 않았으니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 아, 어제 하나 지르긴 했다. 십여 년 전에 산 TV가 화면이 고장 나는 바람에 일 년을 TV 없이 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TV를 주문하고 말았다. ㅠ
저자 후데코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캐나다에 사는 60대 블로거 할머니이다. 저자란에 '후데코'만 나와 있어 성인지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반년만 살고 귀국하려는 생각으로 캐나다로 갔다가 캐나다가 좋아 1996년부터 현재까지 캐나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인생사 매번 이렇다. 계획대로 된다면야 그게 프로그램이지, 인생은 아닐 것이다.^^
<사지 않는 생활>에서 주장하는 미니멀 라이프 지침들도 많은 독자들에게는 계획에 그칠 공산이 큰 것들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소비 습관을 바꾼다는 게 다이어트만큼이나 실천하기 어렵다. 미니멀 라이프도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단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쇼핑 습관을 바꾸고 매일 버리는 생활을 해라는 것. 저자는 젊었을 때 옷과 잡화, 책을 계속 사들여서 집 안이 물건으로 가득 차 발 디딜 데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가 왜 그렇게 많이 샀던가 돌이켜 보니까 이유가 이랬단다. 지루하고 심심해서 샀고, 무력감을 해소하고 싶어서 샀고, 마음의 결핍을 쇼핑으로 해소하다 보니까 그만 쇼핑에 중독되어서 계속 계속 사는 생활이 반복 되었다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시발 비용'이고, 서양식으로 말하면 '리테일 세러피(Retail Therapy)'이다. 쇼핑을 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근데 그게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때뿐이다. 그런데도 그게 중독성이 있으니까 더 문제다. 그걸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저자가 주장하는 나쁜 쇼핑 습관 바꾸기 해결방법을 요약하면, 쇼핑 일기를 써서 자신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후에 꼭 필요한 물건만 사자는 것이다. 어휴 쇼핑 일기라니! 사랑에 빠졌을 때도 그 좋은 감정을 매일 일기에 쓴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가계부도 아니고 쇼핑 일기라니 이거 너무 나간 이야기이다. ㅋ
그보다는 한 달 동안 자신이 지출한 내역을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앱을 보실 것을 추천한다. 일주일 단위나 한 달 단위로 체크해서 아 내가 이번 달에 커피를 많이 마셨구나, 옷을 많이 샀구나, 유흥비에 돈을 엄청 쏟아부었구나, 이 정도로만 반성해도 다음 달에는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것도 매일 들여다보면 인생이 피폐해져서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이 적당한 것 같다.
<사지 않는 생활>이 제안하는 지침들 중에서 임팩트 있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결국 몰라서 실천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다. 음주와 흡연이 건강에 그렇게 나쁜 줄 알면서도 단박에 못 끊는 것처럼. ㅠ
저자는 '하루 한 개씩 버리기' 일상화를 제안한다. 이것도 마찬가지 문제이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매일 버리기 시작하면 우리 정신력이 버티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우리 뇌는 뭐든 저장하는 것을 추구하도록 오랜 진화과정 동안 DNA에 축적시켜 왔다.
사바나 초원 시절, 운 좋게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가족과 실컷 먹고 남은 고기는 내일 먹으려고 저장해 놓았는데 사라져 버렸다면? 또 언제 사냥가을 획득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가족 전체의 생존이 위험에 처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 뇌는 손해에 대해 극심한 반응을 보이도록 진화했다. 소유한 물건을 버리는 행위도 우리 뇌는 이와 유사한 상황으로 받아들여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그래서 버리는 것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나는 아파트 재활용 요일에 책을 한 권 이상 버리고, 최근 3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정리해서 버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쉽진 않지만 그것도 습관이 되니 그럭저럭 할 만해졌다.
책은 더이상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이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는 중이다. 한 번 보고 말 책을 집에 쌓아두는 것도 미니멀 라이프에 반한다. 오래된 책은 버리고 5년 이내 책들은 도서관에 기증하면 된다.
<사지 않는 생활>은 고급 재질에 내용과 별로 관계 없는 칼러사진들을 많이 실어 놓았다. 이것도 지나친 낭비다. 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는 책에 웬 칼러사진을 이렇게 많이 넣었대? 나무가 '아야' 한다.
간혹 어떤 블로그를 보면 사진을 수십 장을, 아니 백장 넘게 올린 글도 많던데, 그 많은 사진을 어떻게 보라고 올려놓은 건지. ㅋ 보는 사람은 스크롤 압박에 그냥 나가 버릴 거고, 올리는 사람은 자신의 스크롤바가 점점 작아지는 것과 비례해 자신의 양심도 줄어드는 걸 알까.
서버에 올라간 사진은 데이터센터에 저장되고 데이터센터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므로 그것도 환경 파괴이고 자원 낭비이다.
미니멀 라이프 실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가끔 관련 책들을 본다. 내용은 거기서 거기이지만, 그래도 한 번 읽으면 동기부여가 되고 실천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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