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서울 연수가 드디어 끝났다. 딸내미가 작년 7월 1일 새벽 5시 14분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싣고 손을 흔들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9개월이 지나갔다. 딸이 살던 방을 빼러 어제 서울에 다녀왔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딸내미 오피스텔 짐을 빼고 대전에 들러 아들과 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밤 10시 30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 그런대로 이삿짐을 꾸려놓았지만 오피스텔에 들어서니 난리통 같았다. ㅎㅎ
우리 딸이 뜨개질을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서울에서 외로운 시간에는 뜨개질을 하면서 고독을 달랬나 보다.
아내와 서둘러 짐을 정리하여 차곡차곡 박스에 담았다. 차에 실으니까 트렁크가 가득 찼고, 뒤자석에까지 꾸러미들을 억지로 쌓으니까 그래도 다행스럽게 한 차에 다 실을 수 있었다.
딸이 가끔 허기를 달래던 근처 보승회관 국밥집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와 전화로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수도 요금을 정산했다. 정산하는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던 것 같다. ㅠ
딸을 보면 그래도 천생 여자구나 싶었다. 사과식초와 올리브유며 갖은 조미료와 베이킹 소다를 사놓은 걸 보고 웃음이 났다. 아들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소꿉놀이라고 할까? ㅋ
생활력 빵점인 아들에 비해 딸은 그나마 비교적 야무딱지다. 알아서 잘 챙겨 먹고 근성도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서울에 올라온 김에 내려가는 길에 아들을 보고가야겠다 싶어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으로 한참 달리고 있을 때 딸의 폰이 울렸다. "네? 오우 대박이네요. 결국 우리 팀이 해냈네요!" 연수 최종 선발전에서 딸의 프로젝트 팀이 그랑프리에 뽑혔고, 팀원들에게 창업 지원금, 오피스 제공과 함께 해외 컨퍼런스 참여 특전이 주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달뜬 목소리의 환호성이 들렸다. 딸내미가 "PM 언니인데,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많이 울었고 이런저런 일들로 정말 고생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오, 맙소사, 그랑프리라니! 딸이 원하던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딸이 처음 서울 올라가서 대학교 기숙사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갔고, 그다음에는 고시원과 오피스텔로 전전한 고생을 보상받는 것 같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빠, 수료식에 참석하실 수 있어요? 연수원에서 부모님 참석 여부를 회신해 달래."라고 딸이 물었을 때, 먹구름이 순간 지나갔다. 오늘 하루 고생하면 된다고 다부지게 마음 먹고 서울 올라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ㅠㅠ
대전에서 푸짐하게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딸이 뜨개질한 너구리 삼총사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넘 귀욤귀욤 하다. 딸이 수세미로 쓰라고 뜨개질한 것이라는데, 아까워서 수세미로는 도저히 못 쓸 것 같다. ㅎ
오늘은 하루 종일 빨래를 돌렸다. 딸이 겨우내 덮던 이불이며 옷가지들이었다. 내일도 열심히 돌리고 돌려야 할 것 같다. 옷가지가 넘 많아 "딸, 앞으로 10년 동안은 옷 안 사도 되겠다."라고 했더니 딸이 까르륵 넘어갔다.
빨래를 돌리는 동안, 딸은 거실에서 열심히 창업 작업을 했다. 딸은 서울 가기 전에는 방콕 작업을 했는데, 창업을 하러 이내 서울로 간다 싶었는지, 거실에서 작업을 했다.
창업할 회사 이름도 넘 깜찍하다. 아빠는 아직 겨울 옷을 입고 있는데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컴을 하는 딸을 보니 청춘은 청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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