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학위 수여식은 꼭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벌써 4개월이나 흐르고 말았다. 그땐 겨울이었으나 벌써 폭염특보가 여기저기 확산되고, 어젯밤 강릉에서는 첫 열대야가 나타나는 여름이 되었다. 게으르면 아무것도 기록으로 남지 않고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추억의 단초를 쉽게 풀어낼 수 없게 된다.
학위수여식은 2024년 2월 16일 금요일 오후 2시, 교내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개최되었다. 아들은 지난여름에 가을 학기 졸업을 하고 이 학교 대학원생이 되어 있었다. 이 학교는 1년에 한 번만 학위 수여식을 개최하므로 이번에 참석하게 되었다. 아들이 대학원에 진학한 걸 보면 인생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우리 부부는 전날 미리 올라가 아들을 찾았다. 어쩐 일인지 아들이 처음으로 연구실도 구경시켜 주었는데,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는 눈치였다. 그래도 머리도 식힐 겸 근처 수목원을 찾았고 같이 저녁도 먹고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내와 난 호텔 앞 족욕 공원을 둘러보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다음 날, 딸내미도 서울에서 왔다. 같이 아점을 먹고 교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학위수여식을 차분하게 기다렸다. 노란 장미는 딸내미가 골랐다. 바쁜 일정에도 오빠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러 온 딸이 고마웠다. 캠퍼스에는 점점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교정 곳곳에서 학위복을 입고 꽃다발을 품에 가득 안은 졸업생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학위 수여식이 개최되는 스포츠컴플렉스 앞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안내 요원들도 많이 배치돼 있었다. 졸업생 한 명당 초대장이 2장만 교부되어 나는 별관에서 영상을 보기로 했다. 별관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개회식 선언과 함께 학사 보고가 있었다. 짧은 역사에도 박사생 16,528명, 석사생 39,924명, 학사생 21,561명을 배출했다. 딱딱한 학위수여식에서 조수미 씨에 대한 명예박사 수여와 연설은 신선했다. 역시 예능인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이 학교 초빙석학 교수로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엊그제는 지드래곤이 이 학교 기계공학과 초빙교수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과대학의 예능화? 고개를 갸웃했지만 융합의 시대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대통령이 식장에 입장했다. 대통령이 연설을 어어가던 중에 졸업생 중 한 명이 삭감된 R&D 예산을 복원하라고 주장하자 학위복을 입고 위장해 있던 경호요원 여러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학생을 둘러쳐 메고 나갔다. 소위 입틀막 경호였다. 장내에는 일순 긴장감이 돌았지만 대통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올해에는 예산 지원을 대폭 하겠노라 연설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면, 그 학생은 이 학교 졸업생으로서 후배들을 위하여 정부가 더 이상 R&D 예산 삭감을 하지 못하도록 졸업식장에서나마 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느꼈을 법하다. 그래서 그 학생을 연행한 경찰도 그 학생이 학위수여식의 업무를 방해했는지 여부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에서 버락 오바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처는 확실히 달랐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입틀막 경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학생이나 대통령이나 학위 과정의 기나긴 여정을 기념하는 학위수여식에서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 그럴 거면 왜 참석했나 싶었다.
아무튼, 정치인들의 축사가 끝나고 졸업생들의 대표 연설이 시작되었다. 장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가 했더니 어느새 너도나도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기 시작했다. 엄혹한 환경, 그러나 차마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꿈, 그 소중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 나가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온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식장을 가득 메운 졸업생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모두가 소중한 꿈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랐다. 아들 연구실에서도 박사생 한 명, 석사생 한 명이 이번에 졸업했다. 박사 졸업까지는 5년~8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이르면 2028년쯤 이 학교의 학위수여식에 또 참여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학위 수여식이 모두 끝나고 가족끼리 기념사진을 찍었다. 딸내미가 오빠더러 여러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저 구름을 봐바" "이번에는 저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15도 시선으로 멀리 쳐다봐" 등등 갖은 요구에도 아들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순순히 응했다. 4시간이나 소요된 행사에서 피곤할 법도 했을 텐데 잘 따라 주었다.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아들은 기숙사로, 딸은 다시 서울로, 아내와 난 창원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이 학교에서 보낸 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느 모로 보나 부모보다 백배나 나은 아들딸이지만, 생각할 때마다 걱정이 매번 앞서곤 한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할 때이다. 자녀가 학위까지 수여를 받았다면 부모가 더 이상 걱정을 할 단계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부모가 걱정의 대상이 될 확률이 더 높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글을 쓰자니 사진은 어떻게 첨부하고 각각의 기능들은 어떻게 찾는지 헷갈렸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커피 포터에 물을 올리면 언제나 냥이가 "야옹, 야아 옹" 뛰어온다. 사료를 주고 돌아서서 커피를 타려는데 냥이가 날 무섭게 올려다봤다. 왜, 그래? 사료를 주고 나면 바로 아삭아삭 먹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도 나지 않은 거 같았다. 돌아서서 냥이 밥그릇을 봤다. 아뿔싸, 사료가 담겨 있어야 냥이 밥그릇에 커피 믹스 가루가 부어져 있는 게 아닌가!
요즘 뭐든 잘 까먹고 헷갈리는 일이 많아졌다. "아빠, 치매 안 걸리려면 블로그에 글이라도 많이 써야 된대요." 아들딸이 이런 말을 가끔 한다. 맞다. 조금 더 부지런히, 조금 더 열심히,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 오늘도 아들은 연구를 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을 텐데 아빠는 이러고 있다. 반성, 또 반성할 일이다.
어, 근데 이 상태로 글 발행을 하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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