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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나홀로 집에 남겨진 홈 셰어링 부부

by 로그라인 2023. 5. 22.

아들이 모처럼 와서 주말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갔다. 대학원 입시와 컨퍼런스 마감에 맞추어 논문을 제출하느라 얼굴이 핼쑥했다. 논문 제출 마감 시간, 새벽 5시까지 검증에 검증을 거듭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대학원 면접에서는 전례와는 다르게 전공 지식에 대한 질문은 전혀 하지 않아서, 그게 좋은 신호인지를 잘 모르겠다고. 아무튼 아들이 이번 주말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장을 단단히 봤다.

전통시장에서 이것저것 사다 보니 짐이 한 꾸러미였다. 가게 아주머니께서 기분이 좋은지 한 말씀했다. "오늘 엄청 많이 사시네에. 너무 많이 샀다고 사모님한테 쫓겨나는 거 아입니꺼?" 

글쎄, 장을 많이 보면 아내도 좋은 거 아니가? 생각하면서도 좀 겸연쩍긴 했다. 신선한 채소며 과일, 한우를 양껏 샀다. 사흘 동안 열심히 요리했다.

아이들이 오는 주말은 시간이 금세 간다. 아직 학기 중이라 주말에도 과제를 하고 있길래 사과를 예쁘게 깎아줬더니 황송해한다. 아내는 꼭 한 마디를 보탠다. 내는 사정사정해야 겨우 깎아주면서, 그렇게 인간 차별하는 거 아이다.

늦은 밤, 아들은 꼭 일본 애니를 봤다. 같이 보고 있자니 잠이 쏟아졌다. 일본 성우의 말은 내게 수면제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일본 애니를 재미있다고 꿋꿋이 보고 있는 아들이 신기해하면서도, 다 큰 녀석이 언제까지 저러려나 싶은 마음이 슬몃 들었다. 

그렇게 사흘이 흘러갔다. 아들은 오늘, 아니 어제 밤 기차를 타고 떠났다. 우리 부부는 아들딸이 주말을 보내고 갈 때면 역 승강장까지 올라간다. 아들딸은 공교롭게도 모두 기숙 고등학교에 갔다. 그때부터 쭉 그랬으니 이제 꼭 10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가자마자 적막감이 여지없이 엄습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전히.

기차역
기차역

기차역 승강장에는 기차가 서서히, 마침내 떠나가고 난 후,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이별이 파도의 포말처럼 언제나 아쉬움으로 서걱거린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공허한 집에 들어서면 냥이가 "야옹"하며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순간은 너무 슬퍼진다.

냥이 간식을 챙겨주며  이 집에 우리 부분만 남은 거가? 하니까, 아내가 퉁명스럽게 우리 부부 아니거든 룸메이트, 아니 방도 각자 쓰니까 굳이 부부라는 명칭을 붙여야겠다면 홈 셰어링 부부라고 해야겠네, 했다. 요즘 부쩍 회화공부를 하더니 기껏 이런 데 써먹는다.

홈 셰어링 부부? 그거 멋진 말인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먼지처럼 이 우주에 와, 연이 닿은 광막한 우주 어느 한 공간에서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 어느 한 공간을,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짤막하고 짤막하다 못해 찰나의 순간을 쉐어링 하다 올 때처럼 그렇게 먼지처럼 사라져 가야 하는 운명이 아닐까?

아이들이 왔다 가고 나면 적막감에 맥주를 혼자 마신다. 언제나 늘 마시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나마 아내는 내가 느끼는 그런 적막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밤 기차가 "빠아앙" 고달픈 소리를 내며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있을 때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읽어봤는지, 저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빠도 한 번 읽어 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은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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