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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김유담 장편소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이십 대의 일과 사랑

by 로그라인 2023. 1. 4.

김유담,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의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창비, 2022)는 연극배우를 꿈꾸다 취업을 한 스물여섯 조연희의 직장 생존기를 담은 청춘 소설이다. 

이 장편소설을 읽기 전에는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라는 평범한 제목에 스물여섯 사회 초년생의 직장생활을 담은 그저 그런 평이한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감 없이 첫 장을 읽었다.

커튼콜 curtain call의 사전적인 뜻
연극이나 음악회 따위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내어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일.

그런데 "등장하자마자 퇴장하고 싶은 무대에 선 기분이다."라고 하는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읽어갈수록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아, 이 작가, 이야기 힘이 굉장한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그리고 밤을 꼴깍 새우며 다 읽었다. 후반부는 눈물바다, 눈물을 쏙 빼고 마는 연희의 이야기에 눈물샘이 폭발하고 말았다. 야심한 시각, 누가 보는 이도 없어 오랜만에 눈물샘을 통제하지 않고 그대로 뒀더니 그렇게 됐다.

나는 형용사나 부사가 많이 들어간 글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굉장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이지 않고서는 커튼콜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써보았다.

대신, 이 소설은 형용사나 부사를 많이 쓰지 않고도 얼마나 이야기를 힘 있게 쓸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 김유담 프로필

1983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밀양에서 성장했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탬버린』 『돌보는 마음』, 장편소설 『이완의 자세』가 있다. 제38회 신동엽문학상, 제1회 김유정작가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에서 김유담은 <탬버린>과 <이완의 자세>에 이어 마지막으로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청춘 삼부작이라 이름 붙여, 세상에 떠나보낸다고 했다. 

김유담은 깜깜하고 막막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이 시대의 '연희'와 '장미'에게 이 소설을 바친다고 했다. 그들이 꿈을 잃지 않기를 ,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썼다고 했다.

작가 소개에는 상세 프로필이 나와있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작가 자신 '연희'와 같은 사회 초년생 시절을 왠지 보냈을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사회초년생의 감정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책표지
책표지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줄거리

이 장편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여섯 '조연희'이다. 대학 다닐 때 연희는 전공 공부보다는 연극 동아리에 미쳐 살았다. 연희는 연극배우를 꿈꾸긴 했으나, 암담한 연극배우의 길보다는 그래도 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 취업의 길을 택한다.

연희는 '드림출판사'에 인턴으로 시작해서 1년 뒤에야 겨우 정규직이 된다. 정규직이 되어 배정된 부서는 악명 높은 키즈콘텐츠 1팀. 팀장은 일과 결혼했다고 할 만큼 부하직원을 가스라이팅해서라도 성과를 내고야 마는 덩치 큰 여성이다.

같은 팀의 성대리는 팀장의 비위나 약삭빠르게 맞출 줄 알고 진작 일은 뒷전이다. 연희는 신입사원 1호로서 성대리의 일을 뒤치덕거리하고, 팀장의 차 세차도 거의 도맡다시피 하며 연극배우의 길 못지않게 고달픈 신입사원의 나날을 보낸다.

반면, 대학 연극 동아리 친구였던 '장미'는 연극 배우의 길에 꿋꿋하게 도전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장미의 인생 모토이다. 장미는 월세 줄 돈이 없어 연희에게 이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구걸할지언정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연희에게는 애인이 있다. 그것도 열 살이나 많은 권실장. 권실장은 드림출판사의 외주 업체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나름 이름 있는 포토그래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애인이 있었다. 그것도 십 년 넘게 사귄 뉴욕에 사는 여자. 일 년에 서너 차례 만나는 국제 연예를 즐기는 것이다. 권실장은 그것도 모자라 연희의 팀장에게도 추파를 던지곤 한다.

그 모든 걸 알고서도 연희는 권실장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사회 초년생의 직장 생활이 너무 고달팠고, 어느 곳하나 의지할 곳 없었던 연희에게는 그래도 그가 유일한 기댈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연희가 그럭저럭 신입사원으로 버티어나가고 있을 때, 키츠콘텐츠 1팀이 발매한 아동전집이 대박을 친다. 퍼즐을 별책부록으로 끼워 넣은 전집은 홈쇼핑에도 진출하여 대박행진을 이어간다.

연희도 이제 어엿한 직장인으로 안착하는 것일까? 여기서부터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의 엄청난 반전이 시작한다.

드림출판사는 별책부록으로 제공한 퍼즐에서 검출된 독성 물질로 아동들의 피해가 확산되자 전 직원이 대국민사과에 나서는 벼랑 끝으로 몰린다.

장미는 장미대로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연극이 틀어지면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다.

육 개월 넘게 월세가 밀려 있었고 집 안에는 쌀 한 톨, 라면 한 봉 지조차 없었던 장미는 다량의 수면제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 잠들었다.

장미는 마지막 통화를 연희와 했고, 연희는 마지막 통화에서 친구의 절망감을 토닥여주지 못했고, 오래 들어주지도 못했다. 

연희는 삶의 무대에서 하고 싶지 않은 배역을 맡아 신입사원 1호를 연기하고 있었고, 장미는 하고 싶은 배역을 맡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무대에 서기도 전에 연극이 끝나버렸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에서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 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는 대사가 절로 기억난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 독후 감삼

앞으로 연희는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고 이름 붙인 무대에 단 한번 올라설 수 있을 뿐이다. 연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이십 대의 한 시절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김유담은 작가의 말에서 "이십 대의 나는 모든 것이 과잉 상태였다. 지나치게 누군가를 좋아했고, 필요 이상으로 누군가를 싫어했다. 주변의 많은 것이 부당하고 불합리하게만 여겨졌던 사회초년생 시절, 내가 가장 미워했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시절을 조금 더 유연하고 대범하게 보냈더라면 하는 후회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라고 했다.

모든 것이 과잉의 상태인 이십 대. 그런데 나는 아직도 지나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잎요 이상으로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 같다. 조금 더 유연하고 대범하게 보내는 방법을 영영 모를줄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조금 더 유연해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소설가 권여선은 추천사에서 '연희'를 이렇게 평했다. "불평불만이 많은 만큼 자기반성에 능하고, 자존감이 높지 않아 남에게 상처도 잘 받고 잘 준다. 호오가 분명해 화가 많고, 옳고 그름의 잣대가 흔들려 때로 회의하고 자주 좌절한다"

연희가 자존감이 높지 않다고? 상처를 잘 받고 잘 준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자기반성을 할 줄 모르던데? 아무튼 나는 자존감 운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믿지 않는 편이다.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지, 아니면 권여선 소설가의 자존감이 너무 높아 연희 씨를 그렇게 오독했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연희는 연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십 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인간인 이상 상처받고 상처 주고, 자주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거기에 뭔 자존감의 높낮이가 있을까 싶다.

아무튼,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읽고,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라는 말을 누군가에게는 꼭 해주고 싶다. 박수받지 않아도 충분히 좋으니까, 우리 조금 더 힘을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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