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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by 로그라인 2022. 8. 24.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 에세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복복서가, 2020)을 읽으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난 시칠리아 여행에서 김영하 부부는 그야말로 생고생을 하며 시칠리아 여행을 했고, 그 여행기를 이 책에 담았기 때문이다. 혹시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일부러 고생을 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는 2008년 이루어졌고, 2009년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라는 제명으로 여행기를 출간하였다가 절판되었다. 서문에서 작가 김영하는 절판된 책이었지만 꾸준히 찾는 독자가 있어 새로운 장정과 편집으로 펴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적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복복서가에서 재출간되었다. 그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이다. 남편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아내는 남편의 책들을 도맡아 출간하는 출판사의 대표인 셈이다. 가족기업이라고 할까? 조금 욕심이 많다는 생각.

책표지
책표지

왜 오래 준비해온 대답인가?

제명으로만 봐서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여행기인지,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작가가 밝힌 제명이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EBS에서 새로운 여행 다큐멘터리(세계 테마 기행)를 준비하던 담당 PD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찍을 만한 곳을 묻자, 작가 김영하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이 "시칠리아."라고 답했고, 그것이 제명이 되었다고 한다.

책 속 문장
제명이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

좀 어이없는 작명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확실히 좀 있어 보이는 작명이다. 그냥 평범하게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라고 했으면 시칠리아 여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아마 거들떠보지도 안 했을 테니까 말이다.

EBS 세계 테마 기행 제작팀과 시칠리아로 날아간 작가 김영하는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바위산 꼭대기의 옛 성터라든지 신전이 서 있는 언덕 같은 곳에 앉아 생각에 잠겨 메모를 하거나 천천히 거닐어 다니는 연기를 하며 고생을 했다. 시칠리아에서 그렇게 갖은 고생을 했지만 그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시칠리아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마도 여행의 묘미 중의 하나이리라.

책 속 문장
작가에게 시칠리아의 이미지

김영하는 그곳을 떠나와서도 가끔 시칠리아를 생각했고,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고 한다. 시칠리아에는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상상해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고, 따사로운 햇볕과 사이프러스 그리고 유쾌하고 친절한 사내들, 거대한 유적들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 그리고 기타 등등.

이러한 것들이 시칠리아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어디 그런 곳이 시칠리아 뿐이겠는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고생해 가면서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가 여행을 잘 떠나지 못하는 거겠지 하는 푸념과 함께.

작가 김영하의 시칠리아 여행기

EBS와 시칠리아 여행 이후에 작가는 다섯 달 만에 한예종 교수직을 사직하고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여 캐나다로 1년간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 중간에 두 달여의 시간 공백이 생기자 다시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기를 이 책에 담은 것이다.

김영하 부부는 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행 기차표를 어렵사리 끊었지만 두 번이나 기차는 취소되는 바람에 이탈리아 반도 끝으로 14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가서 시칠리아로 들어가는 우회 경로를 택한다. 시칠리아가 뭐길래, 눈물겹기도 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그렇다. 작가의 말대로 그것은 젊었기에 가능했고, 그리고 겁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기차들은 “시간표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고 싶을 때” 떠났을 뿐 아니라 예고도 없이 툭하면 취소되곤 했다. 
(지금도 이탈리아 기차는 그런지 모르겠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여행 에세이가 붐을 이루던 2020년 4월 출판되었고, 잘 팔렸다. 코로나로 비행기 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여행 에세이를 읽어서라도 여행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던 걸까? 오래 준비해온 대답도 여느 여행 에세이와 다를 바 없지만 조금 더 활자가 많은 여행 에세이라고 할까?

책 속 사진들
시칠리아 일상을 담은 사진들

시칠리아의 거리 풍경이라든지, 작가가 매일 만났던 생선가게 모자라든지, 시칠리아의 많은 풍경들을 사진들이 실려 있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들이 아니라서 특별한 감성을 느낄만한 사진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처럼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영화화한 대부 3부작을 애정 하는 사람이라면, 이 여행기에서 눈여겨볼 대목도 짧게 나온다. 그리고 시칠리아의 고대 역사와 옛날에 시칠리아에서 발생했던 지진이 오늘날 시칠리아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등등을 작가 나름의 감성으로 풀어냈다.

그리고 여행 중의 일상 이야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칠리아 풍경
시칠리아의 신전 계곡

두 페이지를 사진으로 채웠거나 한쪽에는 사진, 한쪽에는 작가의 감성을 짧게 적은 편집도 많다. 무려 20페이지 가까이 이어지는데도 있다. 좀 날로 먹는 느낌? 위 사진은 시칠리아 아그리젠토에서 폐허로 변해버린 신전을 바라보며 작가의 감상을 적은 글이다.

하나의 문명이 사라지면 그 문명이 상상했던 것들까지도 함께 소멸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을 이곳에 살았던 일군의 인간들이 자신을 닮은 어떤 존재들을 한때 진지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우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듯······.
- 오래 준비해온 대답 263쪽

독후 에필로그

사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시칠리아로 여행을 갈 계획을 세웠거나 시칠리아를 다녀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기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책이다. 

시칠리아의 역사와 시칠리아의 일상을 담은 여행기이다 보니, 작가 김영하가 쓴 책이 아니라면 이런 마이너한 도시의 여행기에 관심을 가질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잠시 생각해 본다.

작가 김영하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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