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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헤르만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헤세의 삶과 문장들

by 로그라인 2022. 7. 23.

헤르만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인간이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연암서가가 펴낸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론과 독서관,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질풍노도의 시기, 청춘의 한 시절,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읽으며 그의 감성적인 문장에 밤을 지새우곤 했다.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구석이 내게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데미안>의 에바 부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은 한 줄기 구원의 빛과도 같았으니까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새로운 장소에로의 들뜬 여행보다 익숙한 풍경에 침잠하게 된다. 영화도 그렇다. 떠들썩하게 새로 쏟아지고 있는 블록버스터보다 그 옛날 잠 못 들어하며 주인공의 이야기에 속절없이 빠져들던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문학의 세계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춘의 밤을 위로했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헤르만 헤세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좀 과대평가된 측면도 분명 있지만, 그 시절 청춘들에게는 시대 정신과 감성을 이끌어가는 수호신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우리 아들딸이 데미안을 읽는 걸 보고서 놀랐다. MZ 세대들에게도 헤르만 헤세가 소구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고전은 세월을 견디내는 힘이 있나보다.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프로필

1877년 독일 남부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다. 이후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탑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의 노래>와 산문집 <한 밤중의 한 시간>을 발간했다.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키멘 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수레바퀴 아래에서>(1906), <데미안>(1919), <싯다르타>(1922), <황야의 이리>(1927),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1930), <동방 여행>(1932) 등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헤르만 헤세 사진
헤르만 헤세(1877 - 1962)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1943년 발표했다.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1962년 8월, 제2의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헤세는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독일의 3대 고전작가로 꼽히고 있다.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이 책은 2014년에 출간된 <헤세의 문장론>의 개정판이다. 1900년부터 1960년 사이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련된 헤세의 글을 모은 책이다.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애서가로서의 헤르만 헤세, 작가와 비평가가로서의 헤르만 헤세, 독자로서의 헤르만 헤세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책사랑은 좀 지나친데가 있다. 자신의 장서에서 기쁨을 얻는 자는 대체로 자기 마음대로 책을 제본하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며, 특별한 글이나 도안을 넣는다는지, 또는 색상이나 색지, 재료를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되도록 예쁘고 편하며 독특하게 제본할 거라는 거다. 그럼으로써 책에 경의와 애정을 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다독자였던 헤세는 그 누구보다 책을 사랑한 작가이기도 했다.

겉표지
책 겉표지

어이쿠, 이렇게 책을 애지중지하며 보관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그렇게 물신화하는 것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책은 다른 사물과 마찬가지로 그저 책일 뿐이다. 책은 일상의 짐이 되기도 한다. 옛날에는 책이 가득한 집을 방문하며 존경하는 마음 비슷한 것도 들었지만 지금은 반대다. 아, 이 사람 좀 가식적이고 위선적인데도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나이가 들면 책 또한 마찬가지여서 진심 아끼고 즐겨보는 책 몇 권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책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태도는 독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자기가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여 몰두해서 읽을 때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게 독서라고 말이다. 독서에 대한 헤세의 마음가짐에는 일종의 경건함마저 깃들어 있다. 헤세의 이러한 말을 들으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독서도 다른 모든 향유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보다 깊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책을 친구나 연인처럼 대우하고, 책마다 자신의 독자성을 존중해주며, 이런 독자성에 낯선 것은 아무것도 책에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아무렇게 아무 때나 너무 급히 또 너무 빨리 후닥닥 읽어서는 안 되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좋은 시간에, 즉 여유 있고 유쾌한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섬세하고 동감이 가는 언어로 쓰인 사랑스러운 책은 가끔 크게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좋다."(53쪽)

또, 헤르만 헤세는 좋은 책만 골라 읽으라고 했다. 인생은 짧고, 저승에서는 네가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묻지도 않으니까. 생각 없는 산만한 독서는 눈에 붕대를 감고 아름다운 풍경 속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 금쪽같은 인생의 시간을 그저 그런 책을 보느라 낭비해선 안 될 일이다. 가끔 킬링 타임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보기도 했다. 헤세의 다음 말은 나를 엄숙하게 뒤돌아 보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과 우리의 일상생활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113쪽)

헤르만 헤세가 우리 곁을 떠난지 꼭 60년이 되었다. 헤세와 살았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너무 다르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어 읽기에 곤란한 부분들도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책을 너무 읽지 않고, 고작 읽는다는 것이 베스트셀러에만 골몰한다고 걱정했던 헤세의 말은 공감이 간다. 지금 이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서 가장 와닿았던 문장이다. 책만큼 소중한 친구도 없는 시기를 지금 내가 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를 친구로 삼으려 하는 것을 의미한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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