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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한국소설

천명관 고래 부커상 최종 후보, 줄거리와 결말

by 로그라인 2023. 5. 15.

천명관의 고래, 압도적 스케일의 강렬한 서사

천명관의 장편소설 고래가 2023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는 뉴스를 보고, 어? 했다. 아, 영어권에 비로소 최근 번역이 이루어졌구나 했다. 부커상은 인터내셔널 부분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시에 수여한다. 

소설 <고래>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고래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한 전율을 되살렸다.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봤더니 집에 없었다. 기증을 했나? 다행히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2004년 읽었을 때처럼 손에서 책을 떼어놓지 못하고 쭉 읽었다. 좋은 작품은 두 번 읽어도 재미있다. 이런 소설은 최소 한나절은 확보하고 제대로 각 잡고 읽어야 제맛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 레일라 슬리마니는 소설 <고래>에 대해 "등장인물들은 착하지 않지만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결말은 매우 감동적이다"라고 했고, 1차 선정 때에는 "한국의 풍경과 역사를 탐험하는 모험적 소설", "문학의 폭동"(riot of a book)이라고까지 격찬했다.

부커상은 우리나라 문학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이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랐고,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 사실 조금 의아했다. 무지 재미있기는 했으나 너무나 한국적인 마이너 한 장르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저주토끼의 확장판으로도 볼 수 있는 천명관의  <고래>도 최종 후보에 오른 것으로 보아 먼바다 너머 사는 그 사람들도 분명히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기담적인 문화에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수상작은 5월 23일 발표된다. 이번에는 결과를 기다려봐도 좋을 듯하다.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고래>는 데뷔 당시 평단의 호평과 함께 지금까지 10만 부 넘게 팔리며 독자들로부터도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천명관 프로필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골프 가게 점원, 보험 외판원 등을 하며 이십 대를 보냈다. 서른이 넘어 신씨네 영화 <미스터 맘마>의 롯데시네마 입회인으로 시작해서 기획시대 총무과장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영화 <총잡이>, <북경반점> 등의 시나리오는 영화화 됐다. 배창호 감독이나 이명세 감독의 연출부에 기웃거렸으나 오랫동안 감독 데뷔를 하지 못하다가 지난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장편영화 <뜨거운 피>(2022)로 감독 데뷔를 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마흔 즈음, 동생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3년 문학동네신인상 소설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고,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에 '고래'가 당선되었다. 

계간 '문학동네'에 장편소설 '사신(死神)과의 하룻밤'을 연재했고, 작품으로는 윤여정 주연으로 2013년 영화화된 <고령화 가족>(2010)과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필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  <유쾌한 하녀 마리사>, <나의 삼촌 브루스 리>, <퇴근> 등이 있다.

책표지
책표지

천명관 소설 고래 줄거리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

고래의 첫 문장은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나라에 삼 년간 계속된 큰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한 거지 여자가 마구간에서 춘희를 낳았다.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칠 킬로그램에 달했던 춘희의 몸무게는 열네 살이 되기 전에 백 킬로그램을 넘어섰다.

벙어리였던 춘희는 의붓아버지인 文으로부터 벽돌 굽는 모든 방법을 배웠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극장 대화재 이후, 춘희는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오랜 교도소 생활 끝에 벽돌 공장으로 돌아왔다.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작가 천명관은 소설 <고래>의 도입부부터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춘희의 서사가 앞으로 예사롭지 않게 전개될 것임을 경고라도 하듯 춘희가 허기를 채우는 장면을 날것 그대로 비장하게 묘사한다.

백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춘희는 대화재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평대의 벽돌공장으로 돌아와 수의를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목욕을 한 후,

누룩뱀의 꼬리를 잡아 땅바닥에 힘껏 태질을 하고 뱀의 목을 이빨로 물어뜯어 가죽을 벗겨내고 몸통을 한 손에 말아 쥐고 머리끝부터 우적우적 날로 씹어 먹기 시작해 뱀 한 마리를 천천히 다 먹어치운 후, 뱀의 위에서 나온 개구리도 물에 헹궈 먹었다.

내장이 뒤틀리는 구역질을 눌러 삼키고 춘희는 잠시 망연한 묘정으로 공장을 둘러보고 살림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공장에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대왕 고래를 쫒는 여자, 금복

춘희를 낳은 거지는 누구였을까? 그 주인공은 소설 <고래>의 메인 여주 '금복'이었다. 금복은 두메산골에 살았는데, 말을 하도 잘해서 별명이 '약장수'라는 소년과 방에서 그 나이에 흔히 하는 음란한 장난을 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심한 매질을 당했다. 

어느 날 멀리 남쪽 바닷가 도시의 바람을 타고 생선장수가 두메산골에 생선 팔러 왔을 때, 금복은 답답한 산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그 생선장수의 삼륜차에 작은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몸을 실었다. 바야흐로 금복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시작이 된 날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네 살이었다.

금복이 남쪽 바닷가 도시 부둣가 바위에 앉아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고래가 고요한 밤바다에서 불쑥 솟아올라 힘차게 물을 뿜어대는 장관을 넋을 잃고 보고 있던 그날 밤, 그녀가 떠나온 고향마을 산골에서는 욕정의 덫에 걸렸던 불쌍한 아버지가 아이를 낳다 죽은 금복의 엄마를 따라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

금복이 태어나서 처음 고래를 본 그날, 고래는 금복을 매료시켰고, 금복은 평생 동안 대왕고래 같은 거대함을 쫓아다니게 된다. 금복은 무슨 일을 해도 크게 벌여야 되고, 남자도 그랬다.

"글쎄, 크다고 뭐 딱히 좋을 건 없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큰 게 좋겠지."(27쪽)

생선장수는 초라한 두메산골 소녀를 왜 그의 삼륜차에 싣었을까? 그것은 냄새였다. 남쪽 바닷가에서 불어온 바람의 향기에 취해 금복이 무작정 삼륜차에 올라탔듯이, 생선장수는 어디선가 나는 듯한 냄새에 끌려 꼬맹이 금복이를 삼륜차에 태우고 바닷가 도시로 향했던 것이다.

금복의 사내들

그리고 생선장수는 금복의 첫 남자가 되었다. 금복은 유난히 딱 벌어진 엉덩이를 제외하면 그다지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길 가던 사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정체불명의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사타구니에 거웃이 비칠 때부터 풍기기 시작한 그 냄새는 아무리 열심히 구석구석 씻어대곤 해도 사라지지 않는, 어쩌면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냄새였다. 

생선장수와 같이 사는 동안, 금복은 가슴이 성난 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통통하던 엉덩이는 안반짝만 하게 벌어져, 비록 더러운 옷을 입고 일하는 여자들 무리에 묻혀 있어도 누구나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여자가 됐다. 

생선장수의 걱정대로, 금복은 엄청난 장골의 하역부 '걱정'이라는 사내에게 반해 그와 살림을 차린다. 걱정이라는 이름은 어릴 때 먹성이 하도 좋아 그의 부모가 '앞으로 입에 풀칠할 일이 걱정'이라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는 설과 괴걸 한 용모가 양주의 도적인 임꺽정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금복이 놀라운 사업수완으로 부둣가 땅을 빌려 덕장을 세우고 건어물 장사로 떼돈을 번 생선장수는 그녀가 떠난 이후 주색에 빠진 데다 어느 날 밤, 태풍 로라가 불어닥쳐 덕장이 다 날아가는 바람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태풍이 무지막지하게 불던 그날 밤, 금복의 남편, 걱정도 제 힘만 믿고 만용을 부리며 쏟아져내리는 통나무를 막다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방 안에만 틀어박히게 된 걱정은 괴걸스럽게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몸통이 거대한 괴물로 서서히 변해간다.

태풍 로라가 덮치던 날 백주대낮, 금복이에게 눈길을 주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눈처럼 하얀 양복을 입고 부둣가 도시에 처음 지어진 극장 입구에 언제나 서 있는 '칼자국'이었다. 칼자국도 금복의 냄새를 금방 알아챘다. 그날 금복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았다. 존 웨인이 나오는 서부극이었다.

칼자국이 소설 <고래>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칼자국이 등장할 때마다 내레이션을 걸쭉하게 매번 깔아준다.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칼자국은 일본 야쿠자로 커리어를 쌓았는데, 영혼의 여인 게이샤인 나오코를 사랑하기 위해 손가락 다섯 개를 잘랐고, 다시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손가락 여섯 개째를 자른 경력이 있는 비운의 사나이였다.

그렇게도 굳은 결기를 가진 칼자국이었지만, 그는 또다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는 비극적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금복이 때문이었다.

도시 어느 구석이든 돈이 오가는 자리엔 반드시 칼자국의 몫이 따로 있었다. 한 소매치기가 어리둥절한 촌놈의 봇짐을 털어도, 어느 창녀가 외로운 홀아비에게 화대를 받아도, 술장수가 술을 팔아도, 심지어는 물장수가 물을 팔아도 칼자국의 몫은 따로 떼어놓아야 하는 도시였다.

왜 칼자국에게 세금을 내냐고? 그건 그냥 그랬다. 도대체, 왜?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 대답은 몇 년 뒤 부둣가 도시에서 처음으로 선교 활동을 하던 한 전도사에 의해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칼자국의 것은 칼자국에게.(104쪽)

이 문장을 읽고는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유익하지는 않지만 얼마나 멋진 익살인가. 소설 <고래>에는 빵 터지는 대목들이 불쑥불쑥 곳곳에서 요렇게 튀어나온다.

칼자국은 금복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 걱정과 함께 대궐 같은 자기 집에 들어와 살면, 걱정의 약값이며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식량들도 아낌없이 주겠으니 걱정 없이 살아보자고 한다. 그렇게 기묘한 동거가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밤, 천둥번개 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각성한 걱정이 거대한 몸뚱이를 이끌고 바다로 가고, 그 뒤를 칼자국이 뒤따라가고, 역시 번개 소리에 잠이 깬 금복이 걱정을 찾아 바닷가로 향하게 된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걱정이 첨벙 바다로 뛰어내리는 순간, 그 장면을 지켜보던 칼자국을, 금복이 그의 등 뒤에서 작살로 찔러 죽이는 일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발생한다. 작살에 찔린 칼자국이 뒤를 돌아 금복을 쳐다보며 "도대체, 왜?"라고 중얼거리며 죽어간다.

고래 154쪽

쏟아지는 뜻밖의 행운들

그 사건이 있은 후, 금복은 전국을 떠도는 거지가 된다. 삼 년간 계속된 전쟁이 끝나가던 해 겨울, 춘희를 낳았다. 쌍둥이 자매의 술집 마구간에서 코끼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난 춘희는 벙어리였으며, 기골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눈동자가 '걱정'을 쏙 빼닮았다.

걱정이 죽은 지 4년이나 지난 후였으므로 도저히 걱정의 딸일 수가 없었지만, 금복은 걱정의 딸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그녀가 죽을 때까지 춘희를 멀리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춘희의 아버지는 금복이 다리 밑 움막에서 기거하던 몇 명의 거지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쌍둥이 자매의 보살핌으로 기력을 회복한 금복은 우연한 기회에 박색의 한 노파가 장사를 하던 평대의 국숫집을 맡아 운영하게 된다. 

그 노파는 천하에 보기 드문 박색이라 시집간 지 하루 만에 신랑 품에 한 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소박을 맞고 쫓겨나 남의 집 드난 살이로만 떠돌다 한 대갓집 부엌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대갓집 외아들이 하필이면 반편이었고, 그 바라지를 박색이 하게 되었다.

지능지수가 서너 살 먹은 어린애 수준에서 멈추어버린 반편이었지만 양물은 물경 한 자에 이른 게 문제였다. 박색이 몰래 반편이게 요분질을 하다 안방마님에게 들켜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고 만 것이다. 

며칠 후 박색노파는 야밤에 그 대갓집에 몰래 숨어 반편이를 꼬셔 마을 앞에 흐르는 큰 개울가를 데리고 가서 생의 마지막 섹스를 하고는 그 반편을 물에 빠져 죽인다.

그 뒤 박색은 딸을 낳았는데, 그 눈이 반편이를 빼닮아 박색은 얼떨결에 불쏘시개를 딸의 눈에 찔러 그 딸은 평생 애꾸로 살아가게 된다. 애꾸는 먼 훗날 금복이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춘희의 목숨을 구해준다. 애꾸가 꿀벌 떼를 시커멓게 거느리고 등장하는 장면들은 무협지의 에피소드를 능가한다.

아무튼, 박색노파가 하던 국숫집을 물려받은 금복은 비가 장대같이 오던 어느 날 밤, 천장이 무너지고 무너진 천장에서 지전들이 한 장 두 장 내려오면서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게 된다. 박색노파가 이중 천장을 만들어 숨겨놓은 돈이었다. 목숨을 걸고 평생을 모은 어마어마한 돈과 땅문서들이었다. 뜻밖의 행운은 이런 것이다.

금복은 그 엄청난 돈으로 평대에 벽돌공장을 지어 文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였고, 도시 최초로 평대다방을 개업하여 쌍둥이 자매에게 운영을 맡겼고, 평대운수를 창업하여 생선장수에게 마을버스를 맡겼다. 

금복의 행운과 놀라운 사업수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박색노파의 거금을 거의 다 떼려 부은 벽돌공장에서 생산한 평대벽돌이 마침내 전국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고 금복은 사업가로 대변신을 한다. 

사업가로서 대성공을 거둔 금복은 지방을 시찰하러 다니던 나라의 장군과 악수를 나누었고 사진도 찍었다. 장군은 군복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금복은 키가 작아 장군과 같이 맨 앞줄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장군은 볼품이 없더군. 키도 작고 얼굴도 새카만 게 도무지 큰 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어. 만일 그랬다면 틀림없이 거기엔 뭔 야로가 있을 거야." (286쪽)

그러나 박색 노파의 유령이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둘 비극이 시작된다. 소설 고래는 여기서부터 전설의 고향 버전으로 급전환한다. 마을에 유령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생선장수가 운전하던 마을버스가 사고를 일으켜 쌍둥이자매가 기르던 코끼리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쌍둥이자매도 죽는다. 

그래도 금복은 꿈에 그리던 극장을 건설한다. 대왕고래를 본뜬 극장의 운영을 약장수에게 맡긴 금복은 남정네들은 질릴 대로 맛을 본 터라 그녀의 눈길은 이제 기생 수련에게로 향한다. 수련을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그녀는 서서히 남자가 되어간다.

극장은 몰려드는 관객들로 연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극장 지배인인 약장수는 금복을 배신하고 수련과 함께 야반도주한다. 수련이 떠난 후, 금복은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으며 벽돌공장의 인부들도 파업에 돌입하는 일이 벌어진다. 금복이 일으킨 모든 사업이 망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고래 결말

큰 것을 빌려 작은 것을 이기려 했고, 빛나는 것을 통해 누추함을 극복하려 했으며, 광대한 바다에 뛰어듦으로써 답답한 산골마을을 잊고자 했던 금복에게 그녀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며 그녀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금복이 술집에서 무심코 내뱉은 '야로'라는 말은 초주검이 되는 고문으로 돌아왔고, 시멘트 벽돌의 출현은 벽돌공장을 문 닫게 만들었다. 文은 그녀와 처음 낮거리를 했던 개울가에 빠져 죽었다. 금복이 한때 사랑했던 남자들이 모두 죽은 것이다.

드디어 운명의 날, 금복은 800여 명이 운집한 고래 극장에서 서부극을 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예감을 느낀 춘희는 엄마를 만나러 극장으로 향했다. 춘희가 극장 로비에 들어섰을 때, 박색 노파가 극장 출입문들을 밖에서 하나하나 걸어 잠그고 있었다. 

금복은 영화를 보며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려다 나이터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불이 순식간에 옮겨 붙기 시작했고, 800여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훗날 극장 밖으로 춘희가 혼자 걸어 나오는 걸 봤다고 누군가 증언했다. 춘희의 참혹한 교도소 생활의 시작점이었다.

메인 여주 금복이를 비롯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지만, 소설 <고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아니 지금부터 시작이다. 춘희가 참혹한 영어의 세월을 보내고 벽동공장을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 이 소설에서 소개했던 첫 장면이다.

춘희가 폐허가 된 벽동공장에서 홀로 벽돌을 굽는 나날들은 비극적 인간이 짊어진 숙명을 숙고하게 한다. 가끔 트럭 운전사가 뿌연 연기를 일으키며 벽돌 공장에 와서는 그녀에게 노란 원피스를 주고, 쌀가마니와 먹을거리를 주고 간다.

트럭 운전사도 춘희의 아버지 걱정처럼 타고난 장골 출신이었다. 전국을 유랑하는 트럭운전사는 춘희가 아이를 임신하자 발목이 묶일 것을 두려워 발걸음을 뚝 끊는다. 트럭 운전수가 떠날 때마다 언제 오겠다는 약속은 못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그의 운명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 오겠다는 약속은 못 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약속이거든."

눈폭풍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춘희는 계곡을 헤매다 눈 속에서 그대로 아이를 안고 잠든다. 다음 날 아침 춘희가 깨어났을 때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날, 마음을 고쳐 먹은 트럭 운전사가 춘희에게 오다 눈길에 미끄러져 트럭이 계곡으로 떨어져 죽었다. 그래도 낮과 밤은 흘러갔고,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었다.

소설 <고래>의 결말부의 마지막 페이지들은 하얀 백지 하단에 개망초가 하나 달랑 그려져 있고, 그다음 페이지 역시 하얀 백지 하단에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라는 짤막한 문장만 있다.

그다음 페이지에도 "다시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 페이지도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끝맺는다. 시지프스 신화를 연상시키는 결말부, 이것이 소설 <고래>의 마지막 문장이다.

작가가 붙인 에필로그 둘은 유려한 SF풍의 대서사시이다. 코끼리 점보가 춘희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올라 대기권을 벗어나고, 둥근 지구가 점점 작아져 아주 작은 푸른 구슬이 되고, 성간의 바다를 넘어 춘희마저 투명해져 간다.

천명관의 고래 독후감

제10회 문학동네 심사위원들은 소설 <고래>에 대하여 "예심 위원과 본심 위원들이 문학동네소설상 십 주년을 자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정도로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한 작가가 문학동네소설상까지 수상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문학평론가 류보선),

"고래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뜻밖에 굉장한 흡인력을 발산하며 결말까지 숨 가쁘게 몰입하게 만든다."(소설가 임철우), "누구든 이 작가의 입심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작가는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듯하다."(소설가 은희경),

"고래는 가히 소설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고래>가 다루고 있는 그 유구하고 장려한 시간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 신수정)라고 평했다.

정작 작가 천명관은 작품 속 어딘가에서 "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 그 허망한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며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끝없이 퍼져나가 마침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된, 여느 합궁에 대한 소문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이야기들"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 <고래>의 배경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이다. 작가가 던져놓은 몇몇 단서들로 유추해 보면 춘희는 1953년생이고, 금복이는 1930년대생 쯤 될 것이다. 금복은 한국전쟁 때 전국을 거지와 같이 유랑하며 개고생을 했고, 박정희의 유신정권에도 잡혀가 개고생을 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 어디에서도 '한국 전쟁'이나 '박정희'라는 역사적인 용어들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나라의 큰 전쟁'이나 '선글라스를 쓴 장군'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이 알아서 어렴풋이 유추하도록 했을 뿐이다.

작가 천명관이 애써 그렇게 한 까닭은 소설 <고래> 이야기가 설화 혹은 신화처럼 읽히기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박색 노파와 금복, 그리고 춘희는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작가 천명관은 화자의 입을 빌려 때로는 판소리의 소리꾼이 되어, 더러는 신파극의 변사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들에 짓궂은 해학과 익살, 음담패설과 같은 온갖 풍자를 섞어 우리 시대에 재현하려는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소설 <고래>는 한때 세상에 떠돌았던 허망한 이야기들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세상 도처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욕망에 온몸을 떨고, 불꽃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스스로의 비극적인 운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광대한 우주 한편에서 한낱 먼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운명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금복이 입버릇처럼 내뱉었다는 '어차피 섞어 문드러질 몸'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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