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온다는 입추
오늘은 가을이 온다는 입추(立秋)이다. 찜통더위인데 가을의 입구라니? 뭔가 이상하다. 기온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입추가 아니라 여름 절정인데 말이다. 일 년을 24로 나누어서 15일마다 절기 하나씩을 나름대로 명명했는데 입추는 열세 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봐도 입추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더워 죽겠는데 뭔 입추란 말인가. 이게 다 중국 화북지방에 해당사항이 있는 절기라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절기 하나도 스스로 짓지 못하고 줏대 없이 중국을 따라가야 하나 싶다.
아무튼, 말복은 아니지만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코다리찜을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와이프가 삼계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삼계탕을 이렇게 좋아했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순순히 따랐다. 몇 번을 갔으니 이제 단골집이 된 삼계탕 맛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맛집 구성 요소
이 삼계탕 집에 가면 내부 인테리어가 맘에 든다. 외벽을 유리로 마감하고 창밖에 화살나무를 심었다. 화살나무를 보고 있으면 수족관 안의 나무를 보는 듯 시원해진다. 맛집의 구성 요소 중 음식 외에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요소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삼계탕 집에는 아직 근사한 음악은 배경으로 깔리고 있지 않지만, 대신 벽면마다 유화 그림이 분위기를 맞추어 준다.
이 식당의 반찬은 단조롭다. 양파와 고추, 오이무침과 깍두기. 삼계탕에 꼭 필요한 반찬만 모은 듯하다. 그래도 배추 겉절임이 없는 건 아쉽다.
예약 없이 가도 주문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나온다. 미리 삼계탕을 푹 고와 놓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국물 맛이 진하고 깊다. 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이 집 사장에게 레시피를 비밀리에 전수받고 싶을 정도로. ㅋ
맛집의 레시피?
삼계탕 맛집은 원재료의 신선함과 깊은 국물 맛이 좌우할 것이다. 원재료는 다 거기서 거기일 테고 국물 맛이 승부를 내는 셈이다. 깊은 국물 맛을 내는 이 식당의 레시피는 아마도 영업비밀일 것이다. 설령 레시피를 봤다고 하더라도 미세한 비율과 시간 순서에 따라 천양지차가 날 것이므로 레시피는 그냥 안 물어보는 걸로.^^
어제 과음으로 숙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삼계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맛있게 먹고 있는 걸 보더니 와이프가 한마디 했다.
"코다리찜보다 삼계탕 먹길 잘했지?"
마지막은 수정과다. 뜨거웠던 삼계탕의 뒷맛을 수정과가 부드럽고도 차갑게 마무리했다. 점심을 먹고 아내는 일하러 곧장 갔다. 지나고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그냥 대충 하라고 했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 같다. 세월이 조그만 흘러도 지난 일은 거의 다 휘발되고 남는 것이라고는 어슴푸레한 실루엣뿐이지 않던가. 어쨌든, 입추가 왔으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며칠 전부터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도 들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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