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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아내 회사 식물들, 행운목과 친구들

by 로그라인 2022. 8. 21.

지난번 아내 인사발령 때, 회사에서 회사로 옮기고 남은 식물들을 가지러 밤에 아내 회사로 갔다. 새로 가게 된 회사에 식물을 다 옮길 형편이 안되어 집으로 갖고 왔다. 아내가 사무실에서 키워왔던 식물들이 제법 많았다. 

아내가 동료와 함께 손수레로 식물들을 회사 마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밤에 이사를 하자니 식물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식물들도 밤에는 쉬고 싶고, 잠이 많은 녀석들을 벌써 한 잠에 빠졌을 텐데.

아내 회사 식물
여름밤, 아내 회사 마당으로 옮겨진 식물들

아내는 회사에 자기 방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그간 키워온 식물들을 보니 참 많이도 키웠네, 싶었다. 나는 회사에 다닐 때 내방이 있었지만 난초 하나 겨우 건사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난을 살피고 물을 주곤 하던 그때 그 시절이 순간 생각났다. 지금도 그 난은 잘 자라고 있는지, 그리움이 울컥 일었다.

식물들을 아내는 좋아한다. 바쁜 일과 중에 식물들을 보면 피로가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식물들을 사무실에 하나둘 갖다 놓다보니 어느새 작은 화단이 되었다고 했다. 아내 회사에서 자라던 식물들은 당분간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전세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배란다로 옮긴 식물
아파트 베란다로 옮겨진 식물들

나는 식물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주 옛날 소나무 분재도 하긴 했었지만, 잘 보살피지 못한다. 저기 사진 왼쪽에 보이는 화분은 난초는 온데간데없고 빈 화분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예 식물을 키우지 않는다.

그래도 아내가 회사에서 보살피던 식물들을 낮에 보면 정겨운 맘이 든다. 회사에서 아내는 이 식물들을 보며 위안을 삼았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화분이 말랐는지 가끔 손으로 흙을 만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식물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행운목 이외에는. 궁금할 때마다 아내에게 이름을 물으면 아내는 톡 쏘아붙인다.

"아니, 내일이면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자꾸 물어봐"

맞다. 기억하지도 못할 이름을 나는 왜 자꾸 물어보는 것일까? 행운목은 총각시절, 친구의 자취방에서 처음 봤다. 그 친구 자취방에는 식물이라고는 행운목 하나 달랑 있었는데, 접시 위에서 자라고 있는 행운목이 위태롭고 신기했다. 그 친구 이름은 잊었지만, "행운을 가져다준대서 행운목이래"라며 눈빛을 밝히던 그 얼굴은 아직 생생하다.  

방어막이 쳐진 식물들

그런데, 낯선 환경으로 찾아온 식물들이 수난이 시작되었다. 냥이 코코가 식물들의 잎을 재미로 뜯어먹고는 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저 놈은 지가 먹으면 토한다는 사실을 돌아서면 까먹고 마는 것 같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식물들을 코너로 몰고 그 앞에다 빈 화분으로 산성을 쌓았다. 다행히 코코가 빈 화분을 발로 짚고 식물의 잎을 뜯어먹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는.

오늘 산책하는 길에 뜬금없이 아내가 "자기랑 나랑, 앞으로 얼마나 더 같이 살 수 있을까?" 했다. 20년? 30년?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필멸이다. 그래서 존재는 슬프다. 식물들의 사진을 보니 벌써 잎이 조금 시든 친구도 보인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겠다.

앞으로 30년 동안 건강하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로그라인 블로그의 글은 10,996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부질없긴 하지만 모처럼 야무진 생각을 잠시 하게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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