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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로그라인

딸, 건강하게 연수 잘 다녀와, 역사와 신화

by 로그라인 2022. 8. 18.

햇빛에 바래면 역사, 달빛에 물드면 신화가 된다

어제 오전 11시쯤 딸에게 우체국 택배를 보냈는데 오늘 오후 다섯 시까지도 배송을 완료했다는 문자가 안 와 우체국에 문의를 했다. 우체국 택배를 보내면 대개는 익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는 배송을 완료했다는 톡이 왔었다. 

담당하시는 분은 휴가기간과 폭우가 겹쳐 배송 물량이 밀려 오늘 배송은 힘들 수도 있다고 미안하다는 듯 답했다. 밤  여덟 시쯤 배송을 완료했다는 톡을 받았다. 관공서인 우체국도 밤늦게까지 택배를 하다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딸은 택배를 받았으면 항상 보낸 택배를 잘 받았다고 톡을 한다.  밤 12시가 되어서도 톡이 오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아직 센터라고 했다. 요즘 고시원에는 자러 언제 가? 했더니 새벽에 간다고 했다. 잠이 부족해서 어떡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잠은 좀 자두라고 했더니 딸이 지친 음성으로 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짤막한 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뭐랄까, 딸은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고, 아들은 아들대로 진로를 두고 여러 가지 대안을 검토하느라 여념이 없고, 와이프는 와이프대로 직장 생활에 정신없고, 괜히 나만 편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글쎄, 잘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나이에도······.

이병주는 대하소설 <산하> 서문에 어쩌면 그의 소설보다 더 유명한 명문장을 남겼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 이병주 대하 역사소설 <산하> 서문

하여, 폐쇄한 블로그에  2022. 7. 1(금) 15:38 발행했던 "딸아, 건강하게 연수 잘 다녀와"라는 글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기록으로 남겨둔다. 뭔, 기록이 될지 알 수 없지만. 7월 1일, 딸은 휴학계를 내고 국가에서 주관하는 9개월 연수 프로그램에 청운의 꿈을 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역

새벽 4시 20분에 알람을 듣고 눈을 떴다. 2시쯤 눈을 붙였으니, 두 시간 남짓 잔 모양이다. 알람을 듣고도 딸은 아직 잠결이었다. 4시 30분에 일어난 딸은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캐리어를 들고 5시 14분 서울행 기차를 탔다. 딸의 연수 프로그램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승객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저번 토요일의 기차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차 진입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딸은 무거운 가방과 캐리어를 잡았다. 미리 택배를 보냈어야 했는데 하루 종일 고생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긴다고 생각하고, 건강하게 잘 생활하고 와."
"네, 아빠도 졸음운전하지 말고 조심히 가요."

승객을 모두 태운 기차는 서서히 출발했다. 창가 쪽 자리에 미리 탄 딸의 짝꿍도 손을 흔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검은 머리카락에 큰 눈동자, 차분해 보이는 아이였다. 그나마 단짝 친구랑 같이 생활하게 돼서 조금은 든든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창원중앙역
창원중앙역

기차 뒤꽁무니가 사라져 가는 걸 보며 천천히 플랫폼을 걸었다 기차역은 이별 뒤의 쓸쓸함이 언제나 바람처럼 남는 공간이다.

기차역은 언제나, 새로운 생활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는 떠나는 자의 들뜸과 무사하게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떠나보내는 자들의 마음이 적적하게 감도는 공간이다.

딸내미 가방
딸이 즐겨 메고 다니는 가방

천도복숭아

8시 50분, "센터 도착했어요" 카톡이 왔다. 책상 위에 지갑이 보이는지 물었다. 새벽 잠결에 캐리어에다 그걸 넣었나···.

미처 챙겨가지 못한 수건이랑 배게, 손거울을 챙겨 급히 우체국으로 갔다. 가는 장날이라고, 우체국 주변이 붐볐다. 딸이 평소에 즐겨 들고 다니던 가방도 챙겨 넣었다.

천도복숭아
딸이 유일하게 잘 먹는 과일, 천도 복숭아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걱정으로 먹고사는 것일까? 딸은 입이 짧다. 어제 전통시장에서 천도복숭아 만원 어치를 사 왔더니, 잘 먹었다.

자주 챙겨 줄걸. 같이 있으면서 해 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딸이 건강하게 잘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만 점점 커진다.

기숙사
무사히 기숙사에 잘 도착했다고 딸이 사진 톡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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