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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고전소설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와 뜻, 극작가의 해석

by 로그라인 2023. 5. 22.

고도를 기다리며, 20세기 부조리극의 대표작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민음사, 2000)는 1939년 2차 대전 당시, 작가가 남프랑스 보클루주의 한 농가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희곡으로 쓴 작품이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줄거리를 보면 극적인 사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단순하고도 지루한 하루가 지나가고 그다음 날도 또 그렇게 지나간다. 그런데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52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출판했다. 1953년 1월 5일 파리의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된 고도는 예상을 뒤엎고 관객들이 몰려들었고 이후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지에서 장기 공연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뜻과 해석

연극을 본 사람들은 두 주인공 고고와 디디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Godot)가 무엇을 뜻하는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해석도 제각각이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은 고도가 바깥세상이다, 빵이다, 자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폴란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알제리의 토지 없는 농부들은 이 연극을 보고 토지개혁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한편에서 고도(Godot)가 영어 God와 프랑스어 Dieu(프랑스어로 신을 뜻함)의 합성어의 약자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 극작가 사무엘 베케는 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마라,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도 아예 하지 마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신을 찾고 철학과 사상을 찾는 것은 이 작품에 반하는 해석이다. 작가 베케트는 보클루주의 한 농가에 숨어 지내며 전쟁의 종말을 알리는 전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거기에 무슨 신이 있고 철학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고도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자신에게 가장 간절한 '무엇'으로 해석될 것이다. 인생은 그러한 절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 우리 인생을 이렇게나마 지탱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만약 그 기다림마저 사라진다면 인생은 무화(無化)되는 게 아닐까?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프로필

20세기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실험 문학의 대표 소설가, 시인. 
1906년 4월 13일 더블린 근교, 유복한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엄격한 청교도 분위기에서 자랐다. 1923년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의 영어 강사, 1931년 트리니티 대학의 교수로 부임했지만 강의에 회의를 느껴 1년 만에 사직했다.

1933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유산을 상속받자 유럽의 여러 나라와 방랑자의 고독한 생활이 시작된다. 1937년 파리에 정착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첫 시집 <호로스코프>(1930)와 비평집 <프루스트>(1931), 첫 장편소설 <그저 그런 여인들에 대한 꿈>(사후 출간), 첫 단편집 <발길질보다 따끔함>(1934), 시집 <에코의 뼈들 그리고 다른 침전물들>(1935), 1938년 장편소설 『머피』(1938),  <와트>(1942), <고도를 기다리며>(1952), 프랑스어로 발표된 3부작 소설 <몰로이>(1951),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등이 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1961년 보르헤스와 공동으로 국제 출판인상을 받았고,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9년 12월 22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책표지
책표지

고도를 기다리며 줄거리

시골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제1막의 첫 문장이다. 무대의 시간은 저녁. 에스트라공이 돌 위에 앉아서 구두를 벗으려고 여러 차례 애쓰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가 등장한다. 

서로를 알아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서로를 '고고'와 '디디'로 부르며 무의미하고 하나마나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에스트라공은 개천에서 잠을 잤으며 어젯밤에도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블라디미르는 구세주하고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도둑놈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도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여기가 맞는지, 오늘이 맞는지도 고고와 디디는 확실하게 모른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자기들이 어제 여기에 왔는지도 헷갈려하면서.

그리고 목에 끈을 맨 럭키가 등장하고 그를 몰고 다니는 포조가 채찍을 들고 등장한다. 포조는 여섯 시간이나 계속해서 사람의 그림자 하나 못 보고 걸어왔다며 고고와 디디를 전혀 모르면서도 반가워한다. 

포조는 지루한 고고와 디디를 위해 럭키에게 춤을 추게 하고, 생각한 바를 말하도록 명령한다. 그러자 럭키는 말장난 같은 긴 대사를 쏟아내기 시작하고 디디가 럭키의 모자를 간신히 빼앗자 입을 다물고 쓰러진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포조와 럭키가 퇴장하고, 마침내 고도의 전갈을 갖고 온 소년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런데 소년은 고도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그 말에 디디는 소년에게 그냥 우리를 만났다고만 고도 씨한테 전하라고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86쪽
고도를 기다리며 86쪽

고고는 저가 뒤랑스 강에 뛰어들던 때, 디디가 저를 구해주었으니 둘이 같이 붙어 있은 지가 한 오십 년이 된 것 같다며 회상하며 1막이 끝난다.

제2막도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또 긴 하루가 지나갔다며 서로 다시 만난 걸 반가워하며 어제처럼 무의미한 대화들을 이어 나간다.

긴 침묵.

블라디미르 무슨 말이고 좀 해봐라.
에스트라공 지금 찾고 있는 중이다.

긴 침묵.

블라디미르 (괴로운 표정) 무슨 말이든 해보라니까!
에스트라공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리고 있지.
에스트라공 참 그렇지.

침묵. 

고고와 디디는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낸다.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치며. 어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포조는 장님이 되어 등장하고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 등장한다. 포조는 가끔 명대사를 날리기도 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포조의 명대사

"말끝마다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냐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 고도를 기다리며 150쪽, 포조의 대사

어제와 같이 소년이 등장하나, 어제와 같이 소년은 고고와 디디를 못 알아보고, 디디는 고도 씨가 오늘 밤에도 못 오겠다는 말에 어제와 같이 그냥 나를 만났다고만 전해라고 소년에게 말한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고 고고와 디디는 내일 또 오기로 하고 어제처럼 퇴장하려는 데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으며 막을 내린다.

고도를 기다리며 해설

마틴 에슬린은 베케트의 연극을 '부조리의 연극'이라고 평했고, 베케트를 '유쾌한 허무자'라고 했다. 연극 고도에는 짤막하고 의미 없는 대사들이지만 고고와 디디, 포조와 럭키의 대사들이 마구잡이로 이어진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전쟁을 피해 남프랑스 보클루주의 한 농가에 있는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그 나날들을 견딜 수 없음을 실감했을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바대로 그 시기 말은 베케트에게 삶의 움막이 되었을 것이다.

고고와 디디는 구두도 스스로 벗기 힘들고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노쇠한 방랑자들이다. 의식도 흐릿해 고도를 만날 장소와 시간은커녕 서로의 대화도 번번이 혼란스럽게 빗나간다.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을 때,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연극의 막이 아무리 계속되어도 고고와 디디가 기다리는 고도는 오지 않으리라는 걸 독자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고고와 디디는 내일도 고도를 기다리라는 걸 독자들은 알고 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사는 동안에는 누군가와 무언가 (의미 없는 말이라도) 말을 해야 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몰라도) 무언가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연극은 부조리할 수밖에 없고, 부조리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그렇다. 당신에게도 고도가 있는지, 또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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