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최단경로
강희영의 첫 소설 <최단경로>(문학동네, 2019)는 한 방송사 피디가 전임자의 녹음 파일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녹음된 트랙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그 비밀을 쫓아가는 이야기이다.
<최단경로>는 "진실을 마주하다가 타인이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문제의식을 놀라울 정도의 섬세한 장면 배치와 페이소스 짙은 문체를 통해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최단 경로는 문장, 구성, 내용 어디를 봐도 흠잡을 구석이 없는 뛰어난 작품이다, 감각과 마음이 상승하는 느끼게 하는 소설"이라는 심사평으로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했다.
작가 강희영 소개
1986년 경기 수원 출생. SBS에서 라디오 피디로 일했다. 강희영은 필명으로 작가가 꿈이었던 할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첫 소설 <최단경로>는 작가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커뮤니케이션 사이언스를 공부하던 중에 아이를 출산했고, 아내와 아이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쓴 소설이다.
최단경로 줄거리
진혁은 꾸준히 히트작을 연출한 라디오 피디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기 위해 시드니 대학에 입학하러 간다며 사표를 냈다. 한 달 뒤 그는 퇴직금을 받고 사라졌고, 그 뒤로는 그에게서 연락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혁이 연출을 담당하던 황금 시간대 프로그램은 혜서가 이어받았다. 새벽 시간대의 프로그램만 쭉 맡고 있던 혜서는 반가운 마음으로 인계인수를 받았다.
혜서는 진혁의 업무용 노트북을 열었을 때, 그가 계정을 로그아웃하지 않았다는 걸 발견한다. 혜서는 그가 깜빡 실수를 한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금세 이어졌다.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빈구석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서는 진혁이 저장해 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녹음파일에서 우연히 아무 소리도 녹음되어 있지 않은 듯한 트랙이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는 걸 발견한다.
그 트랙이 있건 없건 간에 방송에서 들리는 소리엔 아무런 차이가 없겠지만, 그 트랙이 진혁의 프로그램이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혜서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느 철옹의 금고 속에 봉인되어 있다는 코카콜라의 제조법이 오늘의 코카콜라를 만든 것처럼.
진혁이 로그아웃하지 않은 노트북은 그가 시드니가 아닌 네덜란드 암스레르담에서 하루에도 여러 곳을 검색해서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혜서는 그가 검색하여 찾아간 장소들을 스트리트 뷰를 열어 실제 거리를 촬영한 화면을 뜯어보았다. 그의 동선은 늘 사거리 중앙의 교통섬에서 시작되었다. 신호등 밑동에 묶인 곰 인형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혜서는 회사에 어렵사리 구일 간 휴가를 내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알 수 없는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소리를 왜 방송에 내보냈는지, 그를 만나지 않고서는 그 궁금증을 해소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최단경로 결말
혜서가 진혁의 동선을 따라 추적하던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만난 건 그가 아니라 애영이었다. 혜서는 그녀의 초대로 그녀가 머물고 있는 암스테르담 미술가 레지던스에서 그녀의 일본인 친구 마이레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애영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때 진혁이와 사귀었는데 임신을 했다. 엄마가 애영을 데리고 암스테르담으로 왔지만 진혁은 따라오지 않았다. 암스테르담에서 아이를 낳았고, 작년에 교통사고로 엄마와 아이를 잃었다. 신호등 밑 곰 인형은 그 아이의 애착 인형이었고, 숨겨진 트랙의 알 수 없는 소리는 아이의 옹알이였다.
교통사고는 부주의한 운전자에 의해 일어났다. 애영의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으나 운전자는 횡단보도가 표시되지 않은 맵을 보고 횡단보도가 없는 줄 알고 그대로 달렸다.
애영은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기 위해 당국에 안락사 신청을 하고, 왜 그런 오류가 일어났는지 암스테르담대학의 기계학습 석사과정에 등록했다. 혜서는 그런 애영을 보고 마이레와 함께 애영 곁에 머물기로 한다.
독후감
책을 다 읽고 권말에 실린 문학동네소설상 심사평을 읽어보았다.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입부가 너무 난해하다, 진입장벽이 있다, 하지만 그 구간만 넘고 나면 흡입력이 상당한 소설이라고 평하는 걸 보고 어, 나랑 정반대로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AI가 화자인 듯한 프롤로그를 읽고, 오 이 작가 대단한데? 챗GPT가 뜨기 전인 2019년에 벌써 AI를 화자로 등장시킬 생각을 하다니, 혁신적이다 생각했다. 녹음파일에 숨겨진 트랙을 읽을 때도 신선한 감각의 간결한 문체가 돋보였다. 엊그제 읽은, 같은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의 문체마저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초반부를 넘어서고 중후반부로 갈수록 문체는 더없이 간결하기는 하나, 상황을 너무 쉽게, 자주 건너뛰어 버리는 문장 전개가 자꾸 독서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피의자의 항소이유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그가 같은 장소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독일인 유학생을 참고인으로 신청했다'라고 서술하고 있으나 피의자와 참고인은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쓰이는 법률용어이므로 재판정에서는 피의자는 피고인으로, 참고인은 증인으로 명명해야 한다. 이런 사소한 부분도 독서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또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가 네덜란드이기는 하나, 불치병 환자가 아닌 심적인 고통도 안락사 허용 대상인지는 모르겠고, 애영이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감도 소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락사 심사관의 질문에 애영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잘 설명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계학습 석사과정에 입학한다고 대답했다.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긴 해도 기계학습을 배운 석사생이라고해서 그 교통사고를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학작품은 일반 독자들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괜히 애먼 기계학습으로 뭉뚱그려 설명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이 소설에는 무책임하게 보이는 진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는 단지 AI의 눈에 샌디섬 해상에서 푸른 점으로 소멸했을 뿐이다. 독자에게 데이터로만 진혁이라는 존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작가로서 너무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까.
암스테르담 레지던스 동료 마이레가 애영의 슬픔을 어떻게 공감하게 되었는지도 공감할 수 없었고, 결정적으로 혜서가 애영의 슬픔에 공감하여 라디오 피디를 그만두고 그녀 곁에 머무르게 된 동기를 찾아볼 수도 없었다. 하긴 숨겨진 트랙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직접' 그녀가 간다는 설정도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소설 <최단 경로>는 내겐 최단 경로가 아닌 셈이 되었다. 에필로그에서 AI는 "설령 바다 위와 같이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노드의 점들이 반짝이더라도, 그들을 기꺼이 나의 내부에 들여놓을 것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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