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잔혹 단편 미스터리
열대야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면서 미스터리나 호러 소설 읽는 것이 최고다.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단편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도 그런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7년 일본 열도를 달궜던 추리 소설이다. 그해 이 소설집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선정됐다. 국내에서는 히라야마 유메아키 마니아들이 간간히 찾는 소설로 남았다.
히라야마 유메아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에는 단편 8편이 담겼다. 8편 모두 수준이 고르고 후다닥 읽을 수 있다. 후다닥 읽지 않으면 비위가 상할 수도 있다. 잔혹하고 기괴하고 자극적이다. 비위가 상당히 약하신 분들은 역겨울 수 있는데,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나도 비위가 꽤 약한 축에 속한다)
작가 히라야마 유메아키 소개
1961년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태어났다. 영화, 비디오 비평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도쿄 전설》시리즈, 《무서운 책》시리즈 등을 통해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다.
논픽션 《이상 쾌락 살인》(1994)으로 주목받은 작가는 《SINKER-가라앉는 것》(1996)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작품집으로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 《멜히오르의 참극》, 《지금, 죽이러 갑니다》, 《미사일 맨》 등이 있다.
목차
에그 맨
C10 H14 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
Ω의 성찬 소녀의 기도
오퍼런트의 초상
끔찍한 열대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괴물 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역자의 글
수록 작품 소개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이 소설집의 표제작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은 소설집에서 가장 평이한 작품이면서도 설정은 신선하다. 이 단편의 화자는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제작된 지도이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도법은
지도 제작의 한 방법으로 자오선을 중심으로 그려진 지도이다. 적도를 중심으로 그리는 메르카토르 도법은 극지방 왜곡이 심해 이를 해소하기 고안된 도법이다. 우리나라의 1:50,000 지도가 횡축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해서 제작된 것이다.
아무튼, 지도책자가 화자가 되어 경어체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주인님은 택시기사이다. 어느 날 택시에 이상한 여자가 손님으로 타고 그를 모욕한다. 모욕을 참지 못한 택시기사는 그녀를 결국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암매장한 위치를 횡메르카토르 지도에 표시한다. 한 번 살해하고 나니 택시기사는 여덟 명이나 사람을 죽이는 연쇄 살인범이 되었다. 매장지를 모두 횡메르카토르 지도에 표시해 두었음은 물론이다.
택시기사는 심장발작으로 갑자기 사망하고 유품을 정리하던 아들이 횡메르카토르 지도를 발견하고 지도에 표시된 매장지를 찾게 된다. 그 아들 역시 어떤 연유에선지 연쇄살인범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대를 이어 살인을 조력하던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책은 최후의 결단을 한다. 이 단편의 극적인 반전,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묘미다.
사물과 얽혀있는 인간의 운명. 사물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작가적 상상력은 일견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살다 보면 사소한 물건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지 않던가.
Ω의 성찬
오메가의 성찬은 일본 독자들의 평이 제일 좋았던 단편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수학도다. 한때 수학도였지만 지금은 조폭의 끄나풀 신세다. 그의 임무는 어떤 짐승을 돌보는 일. 짐승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코끼리 형상을 한 거구의 사내, 오메가다. 오메가는 제 몸무게로 인하여 침대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먹어치우는 일만 하는 짐승이다.
오메가기 뭔가를 먹어치우는 것은 바로 인간의 사체다. 조직이 처리한 사체를 오메가가 먹어치우고 거대한 똥을 싸는 것이 그의 하루 일과다. 주인공은 역겨움 속에서도 오메가를 죽지 않게 뒷바라지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조직의 보스가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어떻게든 오메가를 잘 보살피라고 했으니까.
어느 날 필즈상을 꿈꾸는 주인공의 친구를 우연히 만나면서 수학적인 이야기가 한 동안 나온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리만 가설 등 머리 아픈 이야기들이 잔뜩 나온다.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필즈상의 위상을 다 알게 됐다. 작가 히라야마 유메아키 역시, 아마도 수학도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무튼, 주인공은 오메가를 통해 반전을 시도한다. 반전은 꽤 SF적이다. 뇌를 먹음으로써 뇌를 해킹하는, 아주 원시적인 바이오 해킹 방법으로 주인공은 필즈상 수상을 꿈꾼다. 그러나 반전은 끔찍하게 끝난다.
C10 H14 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
니코틴은 일본어로 니코친이고, 니코친은 니코(두 개) + 친(고추)의 합성어다. 이 단편의 주인공은 타로다. 일본에는 전래동화 <모모타로>가 있다. 모모는 일본어로 복숭아이고, 타로는 소년이다. 이 단편에서 타로는 사장님 아들로, 너무나도 착한 초등학생 도련님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쌍한 거지 노파를 만나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 거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타로가 사는 동네에서 폭행을 당하고, 타로 또한 한 아이에게 폭행을 당하게 된다. 그 뒤 타로는 친한 친구에게도 집단 따돌림(집단 괴롭힘)을 받는 상황에 처한다. 노파에게 동정심을 느끼던 타로는 노파가 고추가 두 개인 것을 쌍안경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 후, 타로는 할아버지의 고추가 왜 두 개일까라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으로 노파를 추궁하다 자신도 모르게 노파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타로는 노파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이 작품은 곰곰이 생각하면 끔찍하고 얼핏 생각하면 어이없다. 노파의 고추도 폭력으로 인하여 두 개가 된 것이었고, 결국 두 개의 고추로 인하여 타로마저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니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나 예기치 않는 의외성에 의해 좌우되고 부질없는 사소함에서 참극이 비롯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단편이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에필로그
원래 이 글은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에 실린 단편 8편의 로그 라인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일거리를 싸들고 늦게 퇴근하신 마눌 님께서 SOS를 쳤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자정까지 마케팅 문구를 검토하고 테마에 맞는 색상을 고르고 골랐다. 마눌 님은 지나치게 디테일하고 섬세하다. 다 거기선 거긴데, 어휘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젠장.
덕분에 블로그 소개 글, "오늘이 가기 전에 내 이야기를 쓸게."는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이미 자정이 넘어버렸으니까. 블로그를 개설하고 어제까지는 대개 밤 10시에 글을 써서 그 날 발행을 용케 해 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글을 밤 늦은 시각까지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도 없을 텐데 밤 12시라는 마감 시간이 뭔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2시면 어떻고, 2시면 어떻고, 또 새벽이면 어떻다는 건가 하는 생각.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블로그 소개 글을 "잠들 기 전에 내 이야기를 쓸게."라고 고쳐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아무튼,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로 지도의 독백, 한여름밤더위 날려 버리는 데는 직방이다. 이 시각, 때맞춰 밤비가 후다닥 내린다. 태풍이 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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