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문학가 황지영의 <블랙박스: 세상에서 너를 지우려면>은 코끝 찡한 청소년 소설이다. 동화 작가였던 황지영이 처음 쓴 청소년 소설이기도 하다.
블랙박스의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 양고울이다. 고울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겨울 방학을 하루 앞두고 절친 예담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백주 대낮에 고울이가 보는 눈앞에서 예담이는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청소년 소설 블랙박스는 절친을 잃은 중학생 고울이가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진다. 감정 과잉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이 자라나는 청소년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 황지영 소개
한겨레아동문학작가학교에서 동화를 공부하고, 2013년 <월간 어린이와 문학>으로 등단했다. 제8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리얼 미래>로 제14회 마해송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감추고 싶은 폴더》, 《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도개울이 어때서!》, 《할머니 가출 작전》,《친구 계산기》(공저)가 있다.
블랙박스 줄거리
고울이는 학원 시간이 늦었다는 예담이를 졸라 그레텔의 책방에 그래픽 노블 <지워진 겨울>을 사러 가자고 졸랐다. 공부도 잘하고 마음씨도 예뻤던 예담이는 친구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고울이와 그레텔의 책방에 간다.
그레텔의 책방에서 <지워진 겨울>을 산 고울이는 예담이가 먼저 <지워진 겨울>을 보라고 건네주고, 예담이는 학원에 늦지 않게 횡당보도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그때 음주운전자의 자동차가 예담이를 덮쳤다.
그렇게 허망하게 예담이가 하늘나라로 간 뒤에 인터넷에는 예담이의 사고 현장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여기저기 떠돈다. 음주운전자를 욕하는 댓글이 달리고, 주위를 차분하게 살피지 않는 예담이의 부주의를 탓하는 댓글도 달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지워진 겨울>이 동성연애를 다른 그래픽 노블이라는 댓글까지 달리고 책을 판 책방 주인까지 인신공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고울이는 타인의 죽음마저 상업적으로 소비대는 세상에 질리고, 자기가 친구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책을 사러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면 예담이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 중학생이 된 고울이는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가지 않는다. 홀로 남은 교실에서 혼자 과자를 먹으며 점심을 때운다. 친구들은 고울이를 '양똘'로 부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민서와 태린이가 제2회 전국 청소년 북튜버 대회 공모전에 같이 나가자고 제안한다. 민서는 독후감을 맡고, 태린은 촬영과 편집을 담당하고, 민서는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선뜻 내키지 않았던 고울이는 민서의 적극적인 대시로 한 팀이 되어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차츰 밝은 아이로 돌아오게 된다.
블랙박스 독후감
예담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 고울이 부모는 고울이가 충격받을 까봐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고 예담이의 장례식마저 알리지 않았다. 그게 딸을 위하는 길이라고 부모는 믿었을 것이다.
외부와 차단된 채, 또 스스로 외부와 차단하며 홀로 고울이가 죄책감을 삭이고, 그래도 꿋꿋하게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고울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짠했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고울이를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블랙박스를 읽으며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무조건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만이 부모의 역할도 아님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러나 소설 블랙박스는 약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울이와 같이 생을 통째로 흔드는 트라우마는 사실, 당사자 스스로 홀로 극복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정신과 상담이 선행되어야 한다. 세월호도 그랬고, 이태원 유가족 사례를 봐도 그렇다.
그래서 고울이 혼자 모든 것을 안고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고독성이 너무 슬펐다. 그나마 민서 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고, 예담이 부모 같은 어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현실에서는 민서와 같은 친구조차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 않던가.
블랙박스의 훈훈한 마무리는 코끝이 찡해져 오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아이들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먼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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